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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소복으로 단장하고 한 벌의 한복이라도 더 짓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여인 이것이 오늘의 이 여인의 모습이다.
가난과 굶주림 끊이지 않는 집안 어른들의 병환 속에서 손에 못이 박히도록 일하고도 일해야 했던 운명이 인내와 의지에 의해 극복이 되었다.
이 여인은 울진군 북면의 두메산골에서 출생하여 국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당시 이장직을 맡고 있던 부친 이완호 씨의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아 어릴 적부터 동리에서도 언행이 방정하고 효성심이 강하기로 이름이 났다.
21세 때 김석용 씨에게 출가했다. 결혼 후에도 시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시동생들을 끔찍이 돌보아 온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어 이웃에까지 그 효행이 알려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고난과 시련의 시기가 닥쳤다.
해병대에서 만기 제대한 남편 김 씨가 울진군 재향군인회 회관 건립에 솔선수범하여 공사 도중 어려운 옥상 작업을 하다 발을 헛디뎌 중상을 입게 된 것이다.
가난에 쫓기면서도 남편의 치료에 밤낮을 다했으나 집안에서의 임시 치료로는 도저히 회복의 가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재향군인회 중앙회장의 각별한 호의로 70년 2월 제1육군 병원에 입원, 진단케 되었으나 진단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골절, 외상성 척수증 즉 반신마비가 되고 만 것이었다. 치료도 물론 불가능했다.
남편은 불치의 불구자가 되고 연로한 시부모와 어린 4남매를 이 여인이 맡게 되었다. 가세는 이미 기울어 질대로 기울어져 연약한 여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방도가 나서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시동생의 상업 자금으로 유일한 재산이던 집까지 빼앗기게 되었다. 불구인 남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어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딸을 중퇴시키고 나머지 자녀의 학업도 포기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갖은 막일과 품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나 식구들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연로하신 시부모가 굶주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으며 병든 남편이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때에 못 먹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자신의 노력이 아직도 부진함을 탓하며 일거리를 물색하던 중 바느질 일이 떠올랐다.
바느질 일이라야 처녀 때 친가에서 조금씩 익혀온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배워서라도 무엇이건 해야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결심하고 그날부터 바늘과 벗했다.
그야말로 바늘 하나에 8식구의 생계를 건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바느질 일도 하루 종일 몰두할 수가 없었다. 노동력이라고는 이 여인뿐인 집안이다 보니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준비 등 세 끼의 식사 준비와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 남편의 대소변 받아내기, 병자의 세탁물 빨기, 노인네들의 시중, 자녀의 뒷바라지 이 모두가 이 여인 혼자의 손을 거쳐야 했다.
장시간 바늘을 들고 있어 부르튼 손은 한날한시도 쉴 새가 없이 기계처럼 움직여야 했다. 하루에 한복을 세 벌에서 네 벌까지 짓는 경우 2천 원에서 2천 5백 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그것도 일이 많은 경우 약속 날짜까지 맞춰 지어주노라면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휴식이란 식사 준비 시간과 남편 시중을 드는 시간이 전부였다.
남편이 하루 종일 컴컴한 방안에서 우울해하지나 않을까 하여 남편을 업고 마을에 나가보고 들에도 나가 가까운 언덕도 오르곤 했다. 못 쓰는 남편의 다리 불구인 남편의 처지를 생각하면 자신의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심해하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위해서 간식도 늘 준비했다. 멀리 나가보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야 하는 세 어른들의 낙은 간식뿐이었다.
돈을 쪼개고 쪼개어 과일이나 과자를 구입해 손 가까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신은 점심 굶기가 예사이면서도 자녀들에게는 나물죽 한 그릇씩이라도 먹여야 직성이 풀렸다.
여인의 이런 의지와 노력은 차츰 그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중단 상태에 들어간 자녀들의 공부를 계속시킬 수 있었다.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옷 한 벌 씩을 더 지어야 했다. 생계비 지출을 뺀 나머지를 조금씩 모았다.
"배우지 않으면 잘 살기 힘들다"는 게 이 여인의 믿음이었다. 이런 피나는 노력으로 맏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둘째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며 막내가 중학교 3학년 일단 시작해 놓은 일이니 무슨 수를 쓰든지 이들을 대학까지 다 마치게 할 작정이다. 자녀들이 학교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이 여인의 가장 큰 보람이요 기대이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오늘도 쉬지 않고 바늘과 싸우고 있다. 조그만 바늘 하나에 8식구의 생계와 건강 장래가 걸려 있다. 소원이라면 온 식구 모두가 건강하며 남편이 비록 불구이긴 하나 오래도록 건강하게 이 여인 곁에 있어 주는 일일 것이다. 연초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 여인은 자신의 효도가 모자람을 크게 탓하기도 했다.
65년 이장과 마을 지도자들의 추천으로 울진 군수로부터 열행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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