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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1975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 월배면 송현동
효녀(孝女) 강성숙(姜聲淑) 49세
부유한 가정에서 호사롭게 꿈 많은 시절을 보내면서 보통 학교를 마쳤다.
일본동경(日本東京)에서 수학(修學)하던 오빠가 보내주는 책으로 고등 과정을 공부했으며 부모의 가르침으로 한학과 제반 예의범절을 익히기도 했다.
19세에 부모의 곁을 떠나 외동 아들인 윤세주(尹世柱)씨와 결혼했으나 혼수감을 흡족히 준비해 가지 못한 탓으로 시모(媤母)와 시누이의 잦은 구박 속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물을 긷고 불을 때어 조반을 준비하고 조부모, 부모, 시누이에 이르기까지 예를 지켜 문안을 드렸다.
선비 집안인 시댁인지라 방문객도 많았으며 기제사도 자주 있었다. 그 많은 빨래를 모두 해야 됐으며 시어른들의 갖가지 시중을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모두 들어야 했다.
공경의 정신으로 시어른들을 대했던 그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다.
시모(媤母)와 시누이의 이유 모를 구박은 끊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지성으로 시부모(媤父母)를 공경해 왔다.
노경의 시모(媤母)는 중풍으로 알아 누워 5년 동안 며느리의 정성스런 간호를 받았으며 시부(媤父)또한 노환으로 4년간이나 신고를 했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하루같이 지극한 마음가짐으로 극진히 시부모(媤父母)를 간호했던 그녀는 끝내 허리가 굽어 버렸다.
49세인 그녀는 30년 동안의 시집살이 끝에 신체가 불구가 된 것이다.
얼마나 그 효심이 지극했으면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효의 도를 다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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