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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1975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시 중구 삼덕동
효부(孝婦) 조상준(趙相俊) 45세
20세 때 고교 재학생이었던 남편과 결혼했다.
그 해 6.25 동란이 터지자 남편은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하더니 다음해 전사했다.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을 잃은 조(趙)씨는 절망을 이겨내고 유복자와 시모(媤母)의 생계를 떠맡았다.
남겨진 재산이 없어 식모살이와 날품팔이로 생계비를 벌어야 했다.
젖먹이 외아들을 시모(媤母)에게 맡겨둔 채 식모살이를 떠난 그녀는 젖이 불어 틈틈이 집으로 달려가곤 했으며 공사판에서 날품팔이를 할 때는 시모(媤母)가 공사장까지 아기를 업고 와 젖을 먹이곤 했다.
시모(媤母)의 뒷받침으로 5년 만에 자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단칸 셋방을 얻고도 행상 자금이 마련된 것이다.
하루 종일 고달픈 생사길이었으니, 집에서 아들을 지켜주는 시모(媤母)를 위해 밤늦도록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젊음을 바쳐 희생한 대가는 아들에게 돌아왔다. 줄곧 장학생으로 대학까지 졸업한 외아들이 가족의 생계를 떠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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