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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분생(崔忿生) 여사는 경북 부계면 대율리에서 태어나 가호리에 거주하던 이정윤(李偵尹) 씨에게 시집을 왔다.
겨우 집 한 채가 전 재산이었던 시집은 비록 농촌이라고는 하지만 부유하게 자랐던 최(崔) 여사에게 고통이 아닐 수 없었으나 시부모를 비롯한 시집 식구를 잘 봉양하며 효도의 도리를 몸소 실천하며 2남 2녀의 자녀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10여년 전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져 눕게 되자 여사께서는 남편 병수발과 간호에 정성을 다하고 시부모께 효도하고 가족들께는 화목하면서 내색 없이 역경을 헤쳐 가니, 이웃 주민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효성의 칭찬 소리가 자자하다.
여사는 남편을 대신해 가계(家計)를 꾸려 오면서 남편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복(福)임을 생각하였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 남편은 식사 시간이 늦어지거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화를 내기가 일쑤였고, 시간 맞춰 식사를 챙겨야 했기 때문에 일을 하러 밭에 나가거나 마을에 일을 도와 주러 나갔다가도 식사 때가 되면 돌아와 시간을 맞춰 식사를 준비하여 챙겨 드려야 했다.
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점심 식사를 마치면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리어카에 태워서 면 소재지에 있는 다방, 쉼터에 데려가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였고, 여사는 다시 밭에 가서 농사일을 해야 했으며, 밭 일을 마치면 남편이 머문 곳으로 달려가 리어카에 다시 태워 집으로 모시고 와서 저녁을 챙겨 주고 하는 모습에 이웃 주민들이 감동(感動)하여 현 사회에 훌륭한 열부요, 효부로서 칭찬이 자자하다.
또한 주민들은 남편 병수발에 최 여사가 얼마나 몇 해를 할 것인가 의구심을 가졌으나 10년을 한결같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리어카를 운행하는 최 여사야말로 참 대견하고 부부도리를 다하는 분으로 현시대에 가장 소중한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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