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허춘식(許春植)

페이지 정보

본문

제26회(1983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청도군 화양읍
효부(孝婦) 허춘식(許春植) 43세

벙어리인 허춘식(許春植) 여사(女史)는, 그와 똑같은 벙어리인 박갑성씨(朴甲成氏)와 결혼(結婚)하여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고 나름대로 행복(幸福)한 나날을 보내며 살아왔다. 

비록 허여사(許女史)는 말 못하는 벙어리였지만, 시부모(媤父母)님을 극진히 봉양(奉養)하는 그의 지극(至極)한 효성(孝誠)은, 몸이 성한 사람보다 몇 배(倍)나 나을 정도였고 남편(男便)을 받드는 정성(精誠) 또한 놀라울 만큼 지극(至極)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부(媤父)님이 영양실조(營養失調)로 자리에 눕게 됐다. 

그러자 허여사(許女史)는 매일(每日)같이 냇가에 나가서 손수 물고기를 잡아다가 정성(精誠)껏 봉양(奉養)했으며, 또한 산(山)과 들을 헤매면서 몸에 좋다는 약초(藥草)를 캐어다 달여 드리기도 했다. 

약초(藥草)를 많이 캤을 때는 일부(一部)를 시장(市場)에 내다판 후 그 돈으로 시부(媤父)님이 좋아하는 음식(飮食)을 마련해 드리기도 했다. 

허여사(許女史)는 비록 몸이 불구(不具)여서 남들처럼 모든 것이 자유(自由)스럽지는 못했지만, 그가 지닌 마음과 행실(行實)은 천사(天使)처럼 착하고 아름답기만 하며 동리(洞里)에서도 모범(模範)이 되고 있는데, 그의 행실(行實)이 오죽 고왔으면 동민(洞民)들도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말 못하는 벙어리아줌마도 충·효·예(忠·孝·禮)의 참뜻을 알고 있거늘 몸이 성한 사람들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너나 할 것없이 허여사(許女史)를 본받아야 하네." 이와 같이 말하면서, 허여사(許女史)의 행실(行實)을 높이 찬양(讚揚)하는 것이었다. 

불효(不孝)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네 집 벙어리 며느리 반만큼도 못하다."고 꾸짖으면 고개를 숙일 정도로 알아듣는다는 것이 동민(洞民)들의 공통(共通)된 중논(衆論)이었을 만큼, 허여사(許女史)는 이 마을에서 훌륭한 사표(師表) 구실을 하고 있었다. 

허여사(許女史)는 비단 병(病)든 시부(媤父)님뿐만 아니라, 시모(媤母)님에 대해서도 시부(媤父)님 못지않게 알뜰한 효성(孝誠)을 바쳐 시(媤)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비록 그 녀(女)와 남편(男便)은 말 못하는 벙어리이긴 했지만, 자녀교육(子女敎育)만은 엄격(嚴格)했으며 평소 자녀(子女)들에게도 "너의 부모(父母)는 비록 말 못하는 벙어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금도 낙심(落心)하지 말고 더욱 꿋꿋한 자세(姿勢)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動員)해서 자녀(子女)들에게 타이르는 그들의 진지한 자세(姿勢)는 엄숙(嚴肅)하다 못해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질 정도였다./

지금껏 남편(男便)과 17여년(餘年) 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싸워본 일이 없다는 허여사(許女史), 그의 두 자녀(子女)들도 그 녀(女)의 고운 마음씨를 그대로 닮아, 그가 집을 비울 땐 자녀(子女)들이 대신(代身)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였다. 

효자(孝子) 집 안에 효자(孝子)난다고나 할까, 그의 자녀(子女)들은 오늘도 말 못하는 부모(父母)님을 위해서 잔심부름을 하는 등 가사(家事)일을 열심히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