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원출(李源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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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1983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안동군 예안면
효부(孝婦) 이원출(李源出) 55세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는 것은 인덕(人德)을 기르는 근본(根本)이라고 했듯이, 이는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가정(家庭)과 이웃을 자애(慈愛)롭게 하는 행위(行爲)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에 대한 시범(示範)을 보여 준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곧 효부(孝婦) 이원출(李源出) 여사(女史)이다. 

20세(歲)에 결혼(結婚)한 이여사(李女史)도 6.25 참극(慘劇)을 피부로 겪어야만 했는데, 그가 첫 번째 겪어야 했던 시련(試鍊)은 6.25의 그 해 가을, 시모(媤母)님의 하체마비증세(下體痲痺症勢)로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면서 봉양(奉養)해야 하는 안타까움이었고, 잇달아 겹친 시련(試鍊)은 인민군(人民軍)에 붙잡혀가 강제노동(强制勞動)을 해 오던 시부(媤父)님과 남편(男便)이 밤중에 도망(逃亡)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큰 사고(事故)였다. 

따라서 이 가정(家庭)에는 기동(起動)을 못하는 시모(媤母)님과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오긴 했지만, 팔다리가 부러져 숨어서 지내는 시부(媤父)님과 남편(男便), 이와 같이 하루 아침에 3명(名)의 중환자(重患者)가 이여사(李女史)의 손길을 기다리게 되었다. 

따라서 그 녀(女)는 전쟁(戰爭)의 와중(渦中)에서도 품팔이와 길쌈 등으로 근근 입에 풀칠을 하면서 연명(延命)해 나가야만 했다. 

특히 시모(媤母)님 구환(救患)을 위해서는 온갖 약(藥)을 다 써 보는 일방(一方), 집 뒤편 바위 밑에 칠성당(七星堂)을 차려놓고 백일기도(百日祈禱)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이 바로 102일(日)째 되는 기도(祈禱)의 날이었는데, 노루 한 마리가 느닷없이 달려와 바위에 부딪치면서 죽는 바람에, 땅 파다가 은(銀)을 얻는 격(格)으로 횡재(橫財)한 일도 있었다. 

이여사(李女史)는 이것이야말로 칠성님이 내려 준 은덕(恩德)이라 생각하면서, 뼈는 뼈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푹 고아서 시부(媤父)님을 비롯한 시모(媤母)님과 남편(男便)에게 드렸다. 

그런데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나 할까 노루고기를 먹은 시부(媤父)님과 남편(男便)의 골절상(骨折傷)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지만 누구보다도 시모(媤母)님은 자신(自身)의 힘으로 변소(便所) 출입(出入)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健康)이 회복되었다. 

'어버이 봉양(奉養)하는 효자(孝子)앞에는 꿩이 스스로 날아와 땅에 떨어지고, 사슴이 스스로 마당에 들어와 잡힌다'는 일화(逸話)가 있듯이, 이여사(李女史)의 지극한 효성(孝誠)에 하늘도 땅도 감동(感動)하지 않고서는 이런 기적(奇蹟) 같은 일이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 후(後) 1962년(年)에 시모(媤母)님께서는 별세(別世)하시고 이제 시부(媤父)님만이 남게 됐다. 

이여사(李女史)는 시모(媤母)님께 못다한 효성(孝誠)을 시부(媤父)님께 바치기로 결심(決心)하고, 품삯 받은 돈으로 매일(每日)같이 술을 사다 드렸는가 하면 건강(健康)에 좋다는 보약(補藥)도 마련해서 시부(媤父)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다. 

지금 이여사(李女史)로 시부(媤父)님은 92세(歲)의 고령(高齡)으로 장수(長壽)의 기쁨을 만끽(滿喫)하고 있다. 

자녀(子女)들도 한결같이 현모양처(賢母良妻)인 어머니를 본받아 학교(學校)와 가정(家庭)에서는 물론 나아가서는 사회(社會)에서도, 행실(行實) 모두가 자랑스러운 해바라기 가족(家族)들이었다. 

이제 모든 시련(試鍊)과 고난(苦難)도 사라지고 지금부터 이여사(李女史)의 앞날에 진정(眞情)한 행복(幸福)이 찾아오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