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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男) 1녀(女)의 어머니이기도 한 서정예(徐正禮) 여사(女史)는 그가 걸어온 한 평생(平生)은 사랑과 봉사(奉仕)로 점철(點綴)시켰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닐 만큼 그의 희생정신(犧牲精神)은 거룩하기만 했다.
비근한 예(例)로 예천읍(醴泉邑), 청복(淸福)1동(洞)에 거주(居住)하는 이문달(李文達) 73세(勢)씨(氏)가 중풍(中風)으로 병상(病床)에서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을 때, 가족(家族0들의 눈총 속에 외면(外面)을 당(當)하고 있다는 딱한 사정을 알고, 1980년(年) 10월(月)부터 다음 해 11월(月)까지 1년(年)동안 자기(自己)집에서 환자(患者)를 돌보아 주었다.
서여사(徐女史)는 그 노인(老人)을 하루 두 차례씩 목욕(沐浴)을 시켜 환자(患者)를 청결(淸潔)히 했으며 의복(衣服)의 세탁(洗濯)은 물론, 심지어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는 일에까지, 그 녀(女)의 너그러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단 한곳도 없을 만큼 극진(極盡)히 보살펴 주었다.
그 후 간호(看護)의 보람도 없이 눈을 감자 장례(葬禮)까지 치러 주는 등, 진실(眞實)한 인간애(人間愛)로 그가 마지막 가는 길까지 보살펴 주었다.
자신(自身)의 남편(男便)이나 친척(親戚)도 아닌 생면불지(生面不知)의 노인(老人)을 이토록 사랑과 봉사(奉仕)로 대(對)해주자, 칭찬(稱讚)하는 소리가 온 동리(洞里)에 울려 퍼졌다.
"세상(世上)에 저렇게 훌륭한 선행자(善行者)가 또 어디 있을까? 예수그리스도나 석가모니도 서여사(徐女史)의 갸륵한 행적(行績)에 발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이와 같이 칭찬(稱讚)하는 동민(洞民)들은 서여사(徐女史)를 가리켜 '부처님 같은 사람이다.'라고 표현(表現)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말 그대로 그 여(女)의 박애정신(博愛精神)과 자비심(慈悲心)은 놀랍기만 했다.
그 후(後) 서여사(徐女史)는 자기(自己)집 사랑방을 경로당(敬老堂)으로 개방(開放)하고, 이곳을 찾는 노인(老人)들에게 빵과 음료수(飮料水)를 제공(提供)하기도 했으며, 특(特)히 서여사(徐女史)는 사회(社會)에서 버림받은 불구농아(不具聾兒) 5명(名)을 친자식(親子息)처럼 보살펴 이들 모두가 새 희망(希望)을 안고 새 생활(生活)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 구실을 해 주는 등 그의 뜨거운 인간애(人間愛)는 끝이 없었다.
이 밖에도 마을 고아원(孤兒院)에 25만(萬)원 상당(相當)의 오르간을 기증(寄贈)하기도 했고,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즐겁게 뛰놀 수 있도록 놀이터에 미끄럼틀 등 놀이 기구(器具)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자연보호운동(自然保護運動), 새 마음 갖기 운동(運動)에도 남달리 관심(關心)이 깊은 서여사(徐女史)는, 길거리를 걷다가도 손수 담배꽁초나 휴지 줍는 일이 버릇이 되어 있을 만큼 남달리 애향심(愛鄕心)도 두텁기만 했다.
"우리의 새 마음은 우리 생활(生活)의 모든 방면(方面)으로 표현(表現)되어야 한다. 일례(一例)로 요즘 전국적(全國的)으로 활발(活潑)히 전개(展開)되고 있는 자연보호운동(自然保護運動)은 새 마음을 갖고자 하는 우리의 좋은 실천도리(實踐道理)로서 진정(眞正) 곱고 깨끗한 마음을 지녔다면 산(山)에서나 길거리에서나, 휴지(休紙) 한 장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
이 한마디만 들어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서여사(徐女史)가 지닌 마음씨는 맑고 곱고 깨끗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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