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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申양이 영덕(盈德)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5살 때였다.
영덕읍에서 방 한 칸을 빌어 자취를 하면서 공부하고 있던 신(申)양에게 집에서 전갈이 왔다. 어머니가 위독하니 집에 와서 살림을 도우라는 편지였다.
담임선생님께 일주일간의 결석계를 내고 급히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한 달 전부터 고열과 구토 등을 일으키며 시름시름 앓아왔던 어머니는 의식을 잃은 채 위독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두 오빠와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당황해 눈물만 흘릴 뿐 소생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신(申)양은 마을을 뛰어 다니며 의식을 잃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주민들을 붙들고 애원했으나 주민들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신(申)양의 집에 몰려와 걱정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병원은 80리길이나 걸어 나가야 겨우 보건소가 있을 뿐이었다. 가족들은 80리 길을 업고 가는 동안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다며, 우선 어머니를 소생시키는 일이 급하다는 의견이었다.
거친 호흡을 내뿜던 어머니는 가끔씩 호흡을 중단한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곤 했다. 어머니의 두 손을 모아 쥐고 울부짖던 신(申)양은 이웃마을 한의학(韓醫學)에 밝은 노인이 살고 있다는 기억을 되살리고는 급히 달려갔다.
노인을 모시고 왔으나 그 역시 별다른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병자의 맥(脈)만 짚어볼 뿐이었다.
그 노인은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는데……」 하면서 망설였다. 사람의 더운 피를 마시게 하면 소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더운 피를 구할 수 있는 길은 4부 자녀 중 한 사람이 신체의 일부를 잘라 피를 뽑아내는 방법뿐이었다.
신(申)양은 어머니 곁을 슬그머니 빠져 나와 부엌으로 들어갔다. 식칼을 꺼내 왼쪽 둘째손가락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첫 마디 끝을 힘껏 내리쳤다. 잘려나간 손가락 끝에서는 붉은 피가 솟아 나왔다.
놀라는 아버지와 두 오빠를 뿌리치고 가쁘게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어머니의 입에 잘려 나간 손가락을 물렸다.
솟아나오던 피는 금새 줄어들어 겨우 어머니의 입술을 적실 뿐이었다.
또 다시 부엌으로 달려간 신(申)양은 좀 더 깊이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에게 충분한 피를 공급하자 의식을 잃었던 어머니가 눈은 뜨며 미소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소생했다」며 기쁨의 울음을 터뜨린 신(申)양은 피가 줄어들자, 또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손가락 두 마디를 완전히 넣어 주었다.
미소를 띠던 어머니는 또다시 의식을 잃고 가쁜 숨을 몰아 쉬더니 신(申)양의 피를 입 안에 가득 머금은 채 조용하게 숨졌다.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자기 신체의 일부를 희생해가면서 어머니를 소생시키려 했던 신(申)양의 효심(孝心)은 마을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마을 주민들은 신(申)양의 잘려나간 손가락을 치료하라고 약을 들고 왔으나, 신(申)양은 이를 모두 물리고 조용하게 어머니의 장례준비를 서두르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손가락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며 어른스럽게 수의(壽衣)를 짓고 부엌 일을 도맡아 해냈다.
신(申)양의 가정은 장성한 두 오빠가 품팔이로 겨우 끼니를 연명하고 있는 빈농. 신(申)양은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삯 바느질, 빨래품 등으로 생계비를 벌고 있던 어머니를 도와 심부름을 도맡아 해 온 효녀(孝女)였다.
오빠가 군에 입대했을 때는 70 고령의 아버지를 따라가 나무를 해오기도 했으며, 어머니 빨래품을 돕기도 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申양이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이 신(申)양의 효행(孝行)을 어여삐 여겨 입학금을 모아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영덕읍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틈틈이 집에 들러 어머니가 바빠 미루어둔 빨래거리, 바느질거리를 갖고 와 말끔히 손질해 보내기도 하고, 일요일은 하루 종일 밭에 나가 농사일을 거들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신(申)양을 귀여워해 힘든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류했으나, 마을 주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일을 한다면서, 마을에 굿은 일이 생기면 어린 나이에도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해내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신(申)양은 70 고령의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기로 하고 학교에 퇴학원서를 냈다.
신(申)양이 학업을 포기하게 됐다는 소문은 또 다시 마을 주민들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현대판 심청」인 신(申)양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졌으며, 학교에서도 효녀(孝女)에게는 학비를 안 받기로 했다는 통보가 왔다.
마을 주민들과 학교 당국의 도움으로 지난 2월 중학교를 졸업한 申양은 현재 어머니에게 못 다한 효성(孝誠)을 아버지에게 쏟고 있다.
신(申)양은 잘려나간 손가락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운명하시기 전 자기에게 보여준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눈물을 쏟곤 한다고 말하면서 아버지가 오래 사실 수 있도록 정성껏 보살피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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