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훈주(羅薰舟)

페이지 정보

본문

제6회(1963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금릉군 농소면 월곡동 389
효부(孝婦) 나훈주(羅薰舟) 36세

17세에 결혼하여 23세에 남편과 사별(死別)했다. 남편은 6·25동란이 터지던 해 입대해 다음해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70 고령의 시부모(媤父母)는 장남의 전사(戰死) 통지를 받던 날 까무라치는 바람에 나(羅)씨는 자신의 슬픔을 나타낼 수조차 없었다. 부엌에서 혀를 깨문 채 눈물을 씹어 삼켜야 했다. 

나(羅)씨의 생활은 남편의 전사 통지를 받고 슬픔을 나타내지 못했듯이 인고의 세월을 혼자 힘으로 감내하면서 견디어온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삶이었다. 

시부모(媤父母)와 두 자녀는 그녀가 살아가는데 있어 유일한 희망이며, 의지할 수 있는 토대였다. 

생활에 불편이 없을 만큼 꽤 많은 농토를 여자 힘으로 경작하기란 힘겨웠다. 그러나 그녀는 해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늦도록 일을 해도 손이 모자랐다. 

시부모(媤父母)는 아들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며느리가 대견했다. 시부모(媤父母)와 며느리가 서로 격려하는 가정에 불화란 있을 수 없다. 시부(媤父)가 중풍(中風)으로 쓰러지자 그녀는 6개월간 시부(媤父)와 같이 침식을 같이해 회생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