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금복(李金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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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1963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월성군(月城郡) 외동면(外東面) 연안리(延安里) 902
효부(孝婦) 이금복(李金福) 50세

13년전 남편을 사별(死別)하고 노시부(老媤父)와 10명의 가족의 생계를 맡고 있으면서, 시부(媤 父)에 대한 효성(孝誠)이 지극해 주민들로부터 효부(孝婦) 표창을 받기도 했다. 남편은 6·25사변 당시 농사일을 나갔다가 적의 포격에 맞아 숨졌다. 

비교적 농토가 많아 생계에 걱정은 없었으나 대가족을 화목하게 이끄는 일은 쉽지 않았다. 노시부모(老媤父母)는 모두 병석에 있어 시부모(媤父母) 봉양하는 일만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바쁜 농사일 틈틈이 시부모(媤父母)의 건강을 돌보았으며, 어진 마음씨와 사랑의 덕(德)으로 가정의 불화를 해소해 집안은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 됐다. 

시모(媤母)가 숨진 후 가정은 다소 위축되었으나 李씨의 효성(孝誠)으로 언제나 순화되었다. 지난해 시부(媤父)의 목에 종기가 솟아나더니 갖은 약을 써도 효과가 없이 종기는 점점 커져 시부(媤父)의 건강마저 위협했다. 

고름을 빨아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입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우리 고유의 전래된 치료법이 있다. 李씨는 서슴없이 시부(媤父) 목의 종기를 찢어낸 후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이 같은 행동은 그녀의 효심(孝心) 때문에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