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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국기(白菊基) 여인(女人)은 성주군(星州郡) 월항면(月恒面) 수원백씨(水原白氏) 집안의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나 유년시절(幼年時節)을 양친슬하(兩親膝下)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다복(多福)하게 여중 1학년까지 다녔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고혈압(高血壓)으로 돌아가시게 되자 가세(家勢)가 기울어져 학업을 중단(中斷)하고 14세의 나이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주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놓인 백여인(白女人)은 이 역경(逆境)을 이겨내는 데에는 신앙심(信仰心)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천주교(天主敎)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백여인(白女人)은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모시고 오라버니를 도우고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동안 출가(出嫁)할 나이(22세)가 되었는데 혼담(婚談)이 오고 가고 했지마는 결혼하는 것보다 독신으로 있으면서 더 큰 사랑을 베풀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부산송도가정원(釜山松道家庭院)(현재: 부산소년의 집)에 자원봉사원(自願奉仕員)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우한 장애인(障碍人)들의 손발이 되어 13년간(1966~1979) 무료봉사(無料奉仕) 생활로 젊음을 바쳤다.
백여인(白女人)은 그동안 지체장애아(肢體障碍兒) 5명(남1, 여4)을 친자식으로 인연(因緣)을 맺어 애정(愛情)과 정성으로 양육(養育)하여 결혼시키고 현재는 모두 착실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명절 때에나 생일날에 문안 인사차 찾아 오는 효심(孝心)을 보고 주위의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신다.
1991년에 25년간의 봉사활동(奉仕活動)을 마치고 여생을 고향에서 보람된 일을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용각(龍角) 2리의 빈집을 사서 고향에 정착(定着)하여 우유배달사업을 하면서 남동생의 자녀들을 데려다가 부양(扶養)하는 것 외에도 소년의 집에 재직할 때에 알게 된 김용욱(41세)씨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1994년부터 해마다 100만원씩 3년간 300만원을 원조해 주고 있다.
또 아포 5리 박영묵씨의 처남 김중만(40세)씨가 하반신(下半身) 불구로 의지할 곳이 없는 불우한 처지에 있다는 사정을 알고 1996년 11월에 경기도 가평에 있는 꽃동네에 입촌하도록 알선해 주고 1996년 3월부터 단국태권도학원생들에게 매주 1회씩 요구르트 100개씩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백여인(白女人)의 숭고하고 순결한 인간애는 메마른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과 경종을 올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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