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김연자(金蓮子)

페이지 정보

본문

제37회(1994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문경군 가은읍
효부(孝婦) 김연자(金蓮子) 60세

김연자(金蓮子) 여사(女史)는 어릴 때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을 잃은 장애인(障碍人) 이갑영씨와 결혼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1980년 2월에 시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허리를 다쳐 하반신(下半身) 불수의 장애자가 되어 거동이 불능하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남의 집 품팔이와 막노동을 해 가면서 병원비와 약값을 조달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면서 시어머니 병간호(病看護)를 극진히 했다.

대소변을 받아 내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 바쳐 1986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6년 동안 병간호를 극진히 하였다.

김여사(金女史)의 남편은 13세 때에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었기 때문에 노동(勞動)을 할 수가 없고 김여사(金女史) 혼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 가계를 꾸려 왔는데 88년 1월에 시동생이 연탄가스중독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시동생이 사망(死亡)할 때까지 1년 동안 병원을 드나 들면서 병간호를 하였다.

불행은 김여사(金女史)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시동생이 돌아가신 그 해, 89년 11월에 남편이 중풍(中風)으로 쓰러져 눕게 되었다.

그 동안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병구완에 지칠대로 지친 김여사(金女史)는 새끼의 끼니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인데 남편이 병으로 눕게 되자 눈앞이 캄캄했다.

이 딱한 사정을 보고 이웃 주민들이 행정당국에 의뢰하여 생활보호(生活保護) 대상자로 보호를 받게 주선해 주었으나 행정기관에서 지원하는 것으로는 남편의 약값을 감당할 수가 없어 김여사(金女史)는 계속 노동을 하면서 약값을 충당하고 있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드리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는 등 정성껏 병간호를 하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답답한 남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 햇살이 따뜻한 봄날에는 집 앞 나무그늘 밑의 돌 마루에 남편을 안고 나와서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는 방에 군불을 지펴서 방의 온기를 조절하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했으나 남편도 1993년 겨울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김여사(金女史)는 10년이 넘도록 시어머니와 시동생과 남편의 병구완을 해 온 진정한 효부(孝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