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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金奉先) 여사(女史)는 1965년 3월부터 현재까지 한국여자신도회(韓國殉敎女子信徒會)의 회원으로서 양로원(養老院) 총무직을 30년 맡아오고 있다.
김여사(金女史)는 65년부터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겠다는 각오(覺悟)를 하고 불우(不遇)한 노인들이 모신 칠곡(漆谷)의 성가양로원에서 봉사(奉仕)하겠다고 입회한 후 당시의 창립자인 서정길 대주교(大主敎)님을 모시고 양로원 운영을 배우면서 살림을 맡기 시작했으나 당시는 재정이 빈약(貧弱)해서 시설(施設)된 농장의 수입만으로 적자(赤子)를 면치 못했다.
김여사(金女史)의 농장수익(農場收益)의 극대화를 위해서 전국의 유명한 농장을 견학(見學)하고 좋은 묘목(苗木)을 구입했으며 과수의 품질향상과 다수확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은 인근 과수농가 중 가장 질 좋고 수확이 많은 농원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 판매대금으로 수용노인(收容老人)들의 식단을 제공하게 되었으며 칠곡군(漆谷郡)에 건의해서 노후(老朽)한 건물을 개조하고 난방시설(煖房施設)을 개량(改良)하여 좋은 환경(環境)으로 개선하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또 신축건물(新築建物) 안의 공동목욕탕(共同沐浴湯)의 이용에 물 사용이 급격(急激)히 늘어나는 실정에 대비해서 91년도에 지하수를 개발하여 풍부한 수원을 확보(確報)하기도 하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또 양로시설(養老施設) 안에서 보호하고 있는 100여명의 노인들 중에서 30여명이 노환(老患)으로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가 필요하나 해당 노인들은 본원에서 생애(生涯)를 마치겠다고 전원이 거부하므로 요양원(療養院)의 신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92년에 국비보조와 지방비 그리고 법인 부담 등으로 433평 규모의 현대식 요양시설(療養施設)과 물리치료실(物理治療室)을 신축하여 시설을 보완하였다.
늘 다른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거동불능(擧動不能)의 상태에 있는 노인들을 간병(看病)하고 시중을 들자니 몸이 지칠대로 지쳐도 김여사(金女史)는 변함없는 사랑과 정성으로 직무에 임(臨)하고 있으며 시설 내에서 연간 10~15명 정도의 노인들이 타계하는데 목욕, 염습(殮襲), 입관(入館)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하니 김여사(金女史)야말로 천사(天使)같은 고운 마음의 소유자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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