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이필남(李弼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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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1993년 4월 23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봉화군 봉화읍
효부(孝婦) 이필남(李弼南) 54세

이필남(李弼南) 여사(女史)는 어릴 때부터 효(孝)는 모든 덕행(德行)의 근본(根本)이라는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서 1958년 22세 때에 안영발(安榮發)씨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지으면서 넉넉하지는 않아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던 중, 1987년부터 시어머니께서 노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시어머니께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정성껏 간병(看病)했으나 차도가 없고 병은 점점 짙어져서 마침내 거동이 불능해지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미음을 끓여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손발을 씻어 드리고, 머리를 빗겨 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이부자리를 세탁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2년 후에 시아버지가 시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한 사람의 병구완도 힘들고 어려운데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두 분의 시중과 대소변의 처리, 그리고 청소와 빨래 등 온종일 매달려 몸이 지칠대로 지쳤지만 한마디 불평을 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병간호에 전념하고 있는 것을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은 참으로 장(壯)한 며느리이고 출중(出衆)한 효부(孝婦)라고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여름에는 통풍(痛風)이 잘 되도록 하고 겨울에는 방이 춥지 않도록 군불을 지펴 방의 온도를 조절하고 옆에 앉아서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재미난 이야기를 해 드리면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마을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면서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6년 동안, 그리고 시아버지의 병구완을 4년 동안 계속해 오던 중 시어머니(媤母)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시아버지의 병구완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여사(李女史)는 어렸을 때에 몸에 익힌 효심(孝心)을 54세가 되는 오늘까지 그대로 실천하여 노환(老患)으로 신고(辛苦)하시는 시부모님의 병구완을 6년 동안 한결같이 성심성의(誠心誠意) 모든 정성을 다 바쳐 한마디 불평도 없이 감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장한 며느리이고 출중한 효부(孝婦)가 아닌가.

경로효친 사상이 쇠퇴해가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