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온자(李溫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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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열행상(烈行賞)
경북 영덕군 병곡면
열부(烈婦) 이온자(李溫姿) 65세

이온자(李溫姿) 여사(女史)는 안동군 도산면 도계리에서 진성 이(李)씨의 후예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꽃다운 나이 16세 때에 안동 권(權)씨 가문의 종부(宗婦)로 출가하였다.

결혼 후 4년 뒤인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되자 사상적인 대립으로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 졌을 때 그 여파(餘波)로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게 되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시아버지와 남편의 시체를 찾기는 했으나 형체가 너무 일그러져서 친척(親戚)들도 모두 꺼려하는데 이여사(李女史)는 마다하지 않고 장례하였고 또 그곳이 수침(水浸)지역이라 해서 네 번이나 개장(開場)하였다.

이렇게 혼백(魂魄)이라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서 온갖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명복을 빌었다.

그 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시어머니와 시동생 그리고 두 자녀를 데리고 영양군으로 가서 피난생활을 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에 노환으로 몸져 눕게 되자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정성껏 병구완을 했으며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집안 일을 해놓고 낮에는 일터에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와서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하고 나면 밤이 깊어 몸은 지칠대로 지쳐도 이여사(李女史)는 굳은 의지와 불굴(不屈)의 정신으로 역경을 해쳐 나갔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유일한 희망은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는 것이었다.

자식들도 이러한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아들은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딸은 출가하여 다복하게 살고 있으며 시동생들도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안동 권(權)씨의 종가 종부로서 친족이 길흉사(吉凶事)에도 있는 힘을 다해서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꽃다운 나이 20대에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주위 사람들이 개가하라고 권유(勸誘)해도 단호히 거절하고 굳게 절개를 지키면서 40여년간 수절(守節)해 온 그 열행을 기리어 1977년에 영덕군수로부터 열녀상(烈女賞)을 수상한 바 있다.

유교적 윤리관이 무너지고 전래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날로 쇠퇴해가는 오늘날 이여사(李女史)의 열행이야말로 한국여성의 참된 상(像)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