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신순희(申順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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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열행상(烈行賞)
경북 영양군 석보면
열부(烈婦) 신순희(申順熙) 56세

신순희(申順熙) 여사(女史)는 청송에서 태어나 1951년 16세 때에 영양에 사는 최병태씨와 결혼하여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단란하게 살았다.

신여사(申女史)가 출가한 이듬 해, 1952년 3월에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게 되자 가난한 살림은 더욱 어렵게 되었으나 신여사(申女史)는 남편을 도우면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었다.

그러던 중, 그 이듬 해 1953년 12월에는 태산같이 믿었던 남편이 사망하였다.

18세의 새댁 신순희(申順熙) 여사(女史)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비통한 심정을 억제할 길이 없었으나 이러한 모든 재앙(災殃)이 자신의 부덕한 소치라고 자책(自責)하면서 시어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며 살았다.

자기의 소유라고는 전답 한 평도 없는 적빈(赤貧)한 처지라서 날품팔이를 하여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어려운 가계를 꾸려가고 있었는데 1964년에 시어머니께서 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슬하에 혈육 한 점 없는 신여사(申女史)는 홀몸이 되어 시동생을 의지하면서 시부모님과 남편의 봉제사를 하고 우애 있게 살아왔는데 1988년에 시동생마저 사망하였다.

이 무슨 운명(運命)의 장난인가.

신여사(申女史)의 가정에 재앙(災殃)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신여사(申女史)는 불굴의 의지로 동서와 합심하여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조카를 양육하고 시부모님과 남편의 봉제사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신여사(申女史)가 출가할 당시는 나이가 어렸고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회(社會)가 혼란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지금도 호적에는 처녀 그대로 친정에 호적에 남아있다.

지금은 남편이 사망했으므로 혼인신고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신여사(申女史)는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이곳 시댁을 떠날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이 56세가 될 때까지 38년 동안 수절(守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전통윤리(傳統倫理)가 무너지고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날로 쇠퇴해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신여사(申女史)는 결혼하고 2년 후에 남편과 사별하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지만 시어머니마저 운명하시고 슬하에 혈육(血肉)이 없으면서도 개가(改嫁)하지 않고 나이가 56세가 되는 지금까지 근 40년 동안 수절하고 있으니 참으로 보기 드문 열부이자 한국 여성상의 표본(標本)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