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곡지(李曲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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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열행상(烈行賞)
경북 당설군 논공면
열부(烈婦) 이곡지(李曲只) 44세

이곡지(李曲只) 여사(女史)는 1967년 20세 때에 이소태(李小台)씨와 결혼하여 가정살림은 비록 어려웠으나 시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1981년에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기간 치료하던 중 결핵균의 감염으로 노동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기만 기다리던 이여사(李女史)는 건강이 회복되기는 커녕 도리어 다른 병으로 악화되었으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얼마 되지 않던 농토는 남편의 치료비에 충당(充當)해 버리고 이여사(李女史)는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남편의 병구완과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어린 자식들을 양육(養育)하기 위해서 날품팔이를 하고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결핵에 복용하는 상비약을 언제나 준비 해 두고 있으나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하기 위해서 노동의 틈이 나는 대로 피로(疲勞)한 것도 무릅쓰고 산과 들을 헤매면서 약초를 채취해서 달여 드리고 지극정성 간병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병석에 누워 약으로 연명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한편 이여사(李女史)는 8순의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 조석(朝夕)으로 문안(問安) 드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인데에도 시어머니의 무료함을 위로하기 위해서 옆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드리기도 한다.

자녀들도 어머니의 지극한 효행(孝行)과 열행을 보고 감화(感化)되어 스스로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장남은 모범청년이며 경찰공무원으로 근무(勤務)하고, 차남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회의 역군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여사(李女史)도 마을부녀회에서 사회봉사활동을 솔선수범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현재 현대금속회사에서 일당 1만 2천원을 받는 일용직으로 일하면서도 남편의 병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병간호를 하는 한편, 연로하신 시어머니의 건강(健康)도 보살피면서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곡지(李曲只) 여사(女史)는 교통사고로 와병(臥病) 중 결핵환자가 된 남편을 10년 동안이나 병구완을 하고 연로하신 시어머니의 건강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쏟으면서 남편 대신에 가장(家長)이 되어 어려운 가계를 꾸려가면서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시켰으니 주위 사람들 모두가 이여사(李女史)의 열행(烈行)을 칭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