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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금(李順錦) 여사(女史)는 남부럽지 않게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3년 동안 하다가 25세때 사업가인 노연극씨와 결혼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화목(和睦)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평화로운 가정에 갑자기 커다란 불행이 닥쳐왔다.
결혼한지 6년만에 남편이 사망한 것이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死別)한 이여사(李女史)는 의지할 곳이 없는 부산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친정인 울진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한때 운수사업이 경기가 좋았으나 친정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가세도 기울어져 생활이 곤경(困境)에 처해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친정 아버지는 실의에 빠져 모든 의욕을 잃고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았고 이여사(李女史)는 친정 부모님과 두 여동생 그리고 자기의 자녀 3남매 등 모두 여덞 식구의 가장이 되어 어려운 가정을 이끌어 가야했다.
당장에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되었지만 일자리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실의에 빠져 좌절도 했으나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울진군에서 가족 계획요원을 모집한다기에 응모하였더니 다행이 합격하여 근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럭저럭 박봉(薄俸)이지마는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는데 1977년에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관절염에다가 중풍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능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어머니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과 의복과 이부자리의 세탁 등 중풍환자의 어려운 시중을 들면서도 직장에는 나가야 했다.
이렇게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12년 동안을 한결같이 이어 오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거나 내색하는 일이 없다 한다.
이순금(李順錦) 여사(女史)는 서울에서 최고학부를 졸업하고 3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평생 동안 수절(守節)하면서 1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해 왔고 강인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으로 기울어진 집안을 이끌면서 동생들과 자녀들을 올바르게 양육하여 사회에 유능한 인재를 배출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여사(李女史)의 열행과 효제(孝悌)그리고 어머니로서의 희생정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감화(感化)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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