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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유교가문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나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부덕(婦德)을 닦은 이준규(李準奎) 여사(女史)는 22세 때 조선조 중기의 문신(文臣)이며 성리학자로서 예학파(禮學派)로 알려진 우복(遇伏) 정경세 선생의 13세손인 정영이씨와 결혼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명가(名家)의 종부(宗婦)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닦은 부도(婦道)를 실천하면서 화목(和睦)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는데 갑작스레 1975년 10월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이 사망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여사(李女史)는 어린 자녀 2남 2녀를 양육하면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명가(名家)의 종부로서 지조(志操)를 지키고 연중 12번의 조상 봉제사와 농사일과 문화재 관리 등 여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재혼하기를 권유해도 꿋꿋하게 자기 의지를 꺾지 않고 종부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
자녀들의 훈육에도 돌아가신 남편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평소의 가훈(家訓)을 좇아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孝道)하는 충효정신을 일깨워 주며 진실하게 살라고 교훈하고 자녀들도 모두 대학을 마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이여사(李女史)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을 전승(傳承)하여 꾸준히 개발해서 1980년 5월에는 KBS “맛자랑 멋자랑”에 출연하여 향토 전통음식을 널리 홍보했고 매년 정경세 선생의 대산루(對山樓) 계정(桂亭) 등 문화유적(文化遺蹟)을 찾아오는 수백명의 학생들과 문화재(文化財) 애호가들의 숙식 등의 편의를 불편하지 않도록 제공하였으며 특히, 여름 피서철에 대산루 주변에 몰려드는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리기를 손수 수거하여 자연보호에도 공헌하고 있다.
또 1980년부터 외서면 명예부녀회장직을 맡아오면서 부녀회의 각종 모임에 참석하여 전통음식 보급 및 건전한 가정 가꾸기 등을 지도하고 부녀회의 활성화에 헌신적으로 봉사(奉仕)하고 있다.
이준규(李準奎) 여사(女史)는 31세의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명문가(名門家)의 종부로서 승조효친(勝朝孝親) 사상을 실천궁행(實踐躬行)하고 문화재보존과 자연보호에 솔선수범(率先垂範)하고 고유의 전통음식의 전승과 보급에 힘쓰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발전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열부(烈婦)로서 모든 여성들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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