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박명옥(朴明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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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1988년 4월 22일)
효행상(孝行賞)
포항시 용흥1동
효부(孝婦) 박명옥(朴明玉) 29세

박명옥(朴明玉) 여사(女史)는 시부모(媤父母)와 남편 그리고 딸 다섯 식구가 가난 하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는 행복한 가정의 주부였다. 

남편이 사회에서 받아오는 봉급으로 가계에 부족하였지만 검소(儉素)한 생활로써 매꾸어 나갈 만큼 알뜰하였다. 

시부모(媤父母)에게는 공경(恭敬)과 순종으로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온화한 얼굴로 대하여 마음을 평안하게 해 드리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지난 1984년 시부(媤父)께서 중풍으로 앓아 눕게 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모(媤母)까지 속병으로 눕게 되었다. 

반신불수(半身不隨)로 오른쪽 수족을 완전히 쓰지 못하는 시부(媤父)님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시탕(侍湯)과 조약(造藥) 등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병의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시모(媤母)님의 속병을 고치기 위해서도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구약(求藥)하고, 병구완에 성력(誠力)을 다했으나, 시모(媤母)님은 박여사(朴女史)의 정성 어린 간병(看病)의 보람도 없이 끝내 1986년에 운명하고 말았다. 

자식된 도리로써 간호에 최선을 못 다했다며 애통(哀痛)함을 다하니 인근주민에게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모(媤母)님과의 사별의 슬픔을 딛고서, 홀로 된 시부(媤父)님을 온갖 정성을 다해 모시며 살아오던 중, 시모(媤母) 별세후 3개월이 채 못되어 남편에게 뜻하지 않은 큰 사고가 생겼다. 

남편이 회사에서 전기수리공사 중 감전사고로 양 어깨와 가슴 부위에 3도 화상을 입고 입원하여 수술을 받게 되었으니 청천벽력(靑天霹靂)이 아닐 수 없다. 

하늘같이 믿었던 남편이 화상을 입고 누웠으니 박여사(朴女史)의 일과는 한결 바쁘고 마음은 무거웠으나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인내로 이겨 낸 보람인지 병세가 다소 호전되어 부상 만 2개월 만에 퇴원하였다.  

그리고 다시 출근했으나 제발되어 재입원하여 2차 수술을 받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시부(媤父)님께 향한 효성(孝誠)은 추호(秋毫)의 흔들림이 없어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봉양(奉養)과 병시중에 열중하였다.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나 할까. 남편의 재수술은 성공적이서 8개월만에 퇴원하여 아직도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완쾌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역경이 겹쳤는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시부(媤父)님의 간병과 시봉(侍奉)에 전념하는 한편, 불편한 남편의 뒷바라지에도 말없이 잘 헤쳐가는 행실(行實)은, 병들어 가는 현 사회에서는 갸륵한 효행의 표본(標本)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