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이용칠(李龍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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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1989년 4월 20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직할시 북구 침산동
선행(善行) 이용칠(李龍七) 39세

이용칠씨(李龍七氏)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한편 통장직을 맡아보면서 8순 노모를 봉양(奉養)하고 이웃 노인들을 공경하며 청소년들을 선도(善導)하고 격려하는 요즘 보기 드문 모범 청년이다.

이(李)씨는 효심(孝心)이 지극해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지만 8순의 어머니를 형들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직접 모시고 있으며 아침 저녁으로 문안 드리고 손발을 깨끗이 씻어 드리고 이부자리를 돌보는 등 언제나 어머니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는데 온갖 정성을 다한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이(李)씨는 평소에도 이웃 어른들을 공경(恭敬)하고 친절하게 모든 이들을 도와 드리는 효친 경로사상이 투철한 사람이다.

이(李)씨는 아파트 경비원의 봉급 월 25만원의 박봉(薄俸)을 절약해서 해마다 어버이날과 연말에는 이 마을 옥산경로당(회원34명)을 방문해서 무료한 노인들을 위하여 술과 다과를 대접하며 말벗이 되어 주고 흥겨운 노래를 불러 노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매년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을 마련해서 자식이 없는 불우한 노인들과 경로당(敬老堂)을 찾아가서 노인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있다.

또한 통장직에 있으면서 직접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폐품(廢品)을 수집해서 매각한 돈으로 불우한 노인의 가정을 찾아가서 작으나마 정성이 담긴 위문품을 전달하고 위로하여 또 자신이 어렸을 때 가난해서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했기 때문에 마을 청소년 중에서 신문 배달하는 불우한 청소년에게 매년 연말에 양말을 선물하고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있다.

비록 물건은 값지고 귀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정성이 고귀해서 사기가 앙양되는 것이다.

이용칠(李龍七)씨는 장남도 아니면서 자청해서 연로하신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고 또 둘째 형이 중풍으로 반신불수의 몸이 되자 대소변을 직접 받아 내고 병간호(病看護)를 정성껏 하고 있다.

형제간에 우애(友愛)를 돈독(敦篤)히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우가 형을 극진히 모시기란 어려운 일이다,

박봉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노모를 시봉(侍奉)하고 효제(孝悌)의 성(誠)을 다하는 한편 이웃 노인들을 공경하며 위로하고 청소년을 보살피는 이용칠(李龍七)씨의 봉사정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