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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자(崔鎬子) 여인(女人)은 1980년 12월 당시 한국자원재생공사 경주지사의 운전기사였던 이광우씨(李廣雨氏)와 결혼해서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고 슬하에 1남을 두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결혼한지 3년째가 되던 1982년 11월, 남편이 사내(社內)에서 하물적재작업(荷物積載作業)중에 밧줄이 끊어져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쳤다
포항선린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타박상 정도로 생각했는데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어 경북대학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받게 되었다.
남편이 입원하자 남편 옆에서 간병해야 했다.
입원실에는 환자가 여럿이 함께 입원되어 있기 때문에 최여인(崔女人)은 앉을 자리가 없어 날마다 거의 서서 지내야만 했다.
2년 가까운 세월을 날마다 서서 지냈으나 허리가 부러지도록 아프고 간병의 고통이 심했으나 최여인(崔女人)은 일편단심 남편의 건강(健康)이 회복 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아내의 정성 어린 간호(看護)와 과학적인 현대의술도 아랑곳 없이 끝내 남편은 회복불능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한지 1년 10개월 만에 퇴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식물인간이 되버린 남편을 데리고 돌아오는 최여인(崔女人)의 가슴은 미어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고 막막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최여인(崔女人)은 그때부터 제 2의 간병생활이 시작되었다.
호흡을 하고 눈만 뜨고 감고 하는 이외에는 아무 동작도 못하는 식물인간에게 음식물을 호스로 넣어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건 물론이고 담(痰)도 빼내야하고 마사지, 목욕 등 하루 종일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병원비(病院費)는 회사에서 부담했지만 월 15만의 약값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최여인(崔女人)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최여인(崔女人)은 꽃다운 나이 24세의 신혼 초부터 장장 6년 동안이나 이렇게 불평 한마디 없이 성심성의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남편의 병구완에 힘쓰고 시부모(媤父母)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
이웃사람들과 친지로부터 식물인간(植物人間)이 된 남편이 회복할 가망이 없으니 남편과 이혼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최여인(崔女人)은 “사람이 어찌 인륜(人倫)에 반(反)하는 짓을 할 수 있겠느냐"하면서 단호히 거절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지성(至誠)으로 남편을 간호하고 있는 최여인(崔女人)의 행위(行爲)는 현대에서 보기 드문 열부(烈婦)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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