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정순옥(鄭順玉)

페이지 정보

본문

제31회(1988년 4월 22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울진군 북구
선행(善行) 정순옥(鄭順玉) 52세

정순옥(鄭順玉) 여사(女史)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18세의 어린 나이로, 1954년 3월에 엄성섭 씨와 결혼하였다. 

몹시도 가난했던 과거의 우리 농촌은 34년 전 정여사(鄭女史)가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릿고개가 되면 끼니를 걱정하는 가정이 한 마을에도 여러 집이 있었다. 

정여사(鄭女史)는 결혼하자마자 당면한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하여 남의 논 300평을 경작하여 생계를 겨우 유지해 갔다. 

그러나 300평의 전답으로 생활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몸이 부서지도록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 냈다. 

몸이 불편하신 시부모(媤父母)를 봉양(奉養)하는 일도 이같이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는 벅찼지만 조금도 내색하는 바 없이 성심 성의껏 봉양(奉養)하였다. 

시부(媤父)님께서 노환(老患)으로 눕게 되자 백방으로 병간호에 힘썼으나 보람도 없이 타계하였다. 뒤이어 남편의 건강마저 나빠지고 급기야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 

남편이 병석의 몸이 되어 거동을 못하게 되니, 생계는 도탄에 빠지고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니, 정여사(鄭女史)의 부담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 곤경 속에서도 남편의 병을 쾌유시키겠다는 일념에 주야불식(晝夜不息)으로 간난(艱難)을 무릅쓰고 병구완을 한 보람이 있어 점차 회복하게 되었다. 

남편이 일어나긴 했지만 완쾌되지 않은 몸이라, 정여사(鄭女史)의 노력이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정여사(鄭女史)는 이제는 열심히 일하여 잘 사는 것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소득이 가능하리라 보여지는 30도(度)의 경사진 산을 개간하기 위해 추운 겨울도 아랑곳 않고 밤낮으로 일하여 600평의 기름진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여기서 나오는 소득으로 남편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으며 여가장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정여사(鄭女史)는 돌아가신 시부(媤父)님께는 너무도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효성(孝誠)을 못 다한 것을 후회하고 90세의 시모(媤母)님에게 효성(孝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지극한 정성으로 모신 보람인지 건강이 좋으시니 하느님의 은혜인가 생각한다. 

건강한 가족들을 보게 되자 정여사(鄭女史)는 농사소득에 힘을 기울여 600평의 뽕밭을 조성하여 누에를 쳐서 이 소득으로 대학에 진학시킨 아들 두 형제의 학비와 가계에 충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온갖 고생과 시련을 겪으며 애쓴 보람으로 두 아들을 대학까지 진학시키고 딸을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켜 출가(出嫁)시키니 자신의 편함을 멀리하고 오직 착하게 살아온 인과(因果)라 하여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