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박정이(朴貞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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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1987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직할시 서구(西歐) 평리4동
선행(善行) 박정이(朴貞伊) 57세

박정이(朴貞伊) 여사(女史)는 1949년(年)부터 30년(年) 동안을 내집 마련을 꿈을 안고 사업(事業)에 거듭 실패(失敗)한 바람에 실의(失意)에 빠져 좌절(挫折)된 남편(男便)을 대신(代身)하여 5남매(男妹)를 둔 일곱 식구(食口) 실질적(實質的)인 가장(家長)역(役)으로 또 직장(職場)인(人)으로서 수많은 시련(試鍊)을 이겨내며 진력(盡力)한 보람으로 마침내 작으나마 내 집이 마련되었다. 그때 그의 마음은 깃을 달고 창공(蒼空)을 훨훨 날 것만 같은 기쁨을 느꼈다 한다.

천자(天資)가 인정(人情)이 많아 불우(不遇)한 사람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박여사(朴女史)는 때늦은 감(感)이 있기는 하나마 지금부터라도 힘 닿는 데까지 불우(不遇)한 사람을 돕겠다고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박봉(薄俸)에 시달리는 박여사(朴女史)의 처지(處地)에 여유(餘裕)가 있어서가 아니다. 

직장(職場)인 연초제조창은 5km나 떨어져 있었는데 매일(每日)같이 걸어 다니며 버스비(費)를 아끼고 폐품(廢品)이나 폐휴지(廢休紙)를 수집(蒐集)하여 팔아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불우(不遇)하고 역경(逆境) 에 처(處)해 있는 사람들을 도왔고, 이것에 그치지 않고 불우(不遇)이웃돕기 성금(誠金) 모금(募金)에 앞장서 가며 돕기도 하는데, 마치 이 일이 자기(自己)에게 부하(負荷)된 천부(天負)의 책무(責務)처럼 생각하고 있다. 

1976년(年) 매리역(裡里驛) 폭발참사(爆發慘事)를 듣고는 참다 못하여 자기(自己) 힘만으로는 모자라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방문하여 현금(現金)과 의류(衣類) 95점(點)을 희사(喜捨)받아 대구(大邱)문화방송국(文化放送局)을 찾아 전달(傳達)함을 시작으로 10년(年) 동안을 불우(不遇)이웃돕기를 비롯하여 양로원(養老院)·보육원(保育院)·경로당(敬老堂) 등을 두루 찾아가서 현금(現金)·의류(衣類)·식료품(食料品) 등을 전달(傳達)한 것이, 현금(現金)은 백만여(百萬餘)원, 의류(衣類)·식료품(食料品)·기타(其他) 구호품(救護品)은 수십점(數十點)에 이르고 있다. 숫자(數字)로 표시(表示)된 것은 미미(微微)하다 할지 모르나, 박여사(朴女史)가 남을 돕는 숭고(崇高)한 정신(精神)과 피나는 노력(努力)을 어찌 수치(數値)로써 다 표현(表現)할 수 있으리요. 

그 일례(一例)로서 불구(不具)의 몸으로 대구(大邱) 연초제조창 앞에서 구두를 수선(修繕)하고 있는 불쌍한 노인(老人)에게 자동(自動)모터휠체에를 마련해 주고 명절(名節)이면 쌀이나 밀가루 등을 전(傳)하고 매일(每日) 점심 때는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헌신적(獻身的)으로 자상(仔詳)하게 보살피는 그 갸륵한 마음씨를, 어찌 수치(數値)로 환가(換價)하여 나타낼 수 있겠는가. 

가정(家庭)에서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성실(誠實)한 주부(主簿)로서, 직장(職場)에서는 근면성실(勤勉 誠實)한 모범(模範)적인 직업여성(職業女性)으로서 사명(使命)을 다하고, 사회(社會)에서는 불우(不遇)한 사람을 헌신적(獻身的)으로 돕고 있는 박여사(朴女史)를 칭찬(稱讚) 않는 이가 없고 아울러 모두가 존경(尊敬)하고 있다. 

인정(人情)이 메마르고 세태(世態)가 날로 각박(刻薄)해져만 가는 현실(現實)에서 실례(實例)가 드문 박여사(朴女史)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갸륵한 마음씨야말로, 우리들 가슴에 촉촉이 단비를 뿌려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