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안우호(安佑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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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1986년 4월 16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포항시 대신동
선행(善行) 안우호(安佑鎬) 46세

경로사상(敬老思想)의 구현(具顯)을 생활화(生活化)함으로써 도의사회(道義社會) 건설(建設)에 크게 이바지한 모범기수(模範旗手)가 있으니, 그가 바로 안우호(安佑鎬) 씨(氏)이다. 

동리(洞里)에서 청년회장직(靑年會長職)을 맡고 있는 안씨(安氏)는 매월(每月) 개최(開催)되는 월례회(月例會)를 비롯한 각종(各種) 모임이 있을 때마다 젊은 층(層)을 대상(對象)으로,   

“조상(祖上)에게 감사(感謝)하는 마음과 부모(父母)의 은혜(恩惠)를 생각하고 효도(孝道)하는 마음 그리고 웃어른들을 공경(恭敬)하는 마음이 생활화(生活化)될 때, 비로소 우리의 가정(家庭)과 우리의 사회(社會)와 우리의 나라가 건전(健全)해진다.”고 역설(力說)하면서 경로사상(敬老思想) 고취(鼓吹)에 남다른 열의(熱意)를 보이곤 했다. 

그가 빛낸 몇 가지 실적(實績)을 살펴보면 1985년(年) 6월(月) 자비(自費) 30만(萬)원을 들여서 노인(老人)들에게 즐거운 효도관광(孝道觀光)을 시켜 드렸는가 하면, 청년회장(靑年會長) 재임(在任) 3년(年) 동안 해마다 경로당(敬老堂)을 방문(訪問)하여 연탄(煉炭) 600장 도합(都合) 1,800장을 전(傳)해 따뜻한 겨울을 보내도록 정성(精誠)을 안겨 드렸다. 

뿐만 아니라 불우(不遇)이웃돕기에도 적극(積極) 참여(參與)하여 청년회(靑年會員)과 더불어 불우노인(不遇老人) 가구(家口) 3세대(世帶)를 찾아가 각기(各其) 백미(白米) 1포식(包食)을 전달(傳達)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안씨(安氏)는 수시(隨時)로 노인(老人)이 거주(居住)하는 가정(家庭)을 방문(訪問)하여 마음으로나마 푸짐한 인간애(人間愛)를 안겨 드리기도 했고, 특(特)히 반상회(班常會)나 각종(各種) 모임에 참석(參席)하여 노인(老人)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일을 선도(先導)하였다. 

“안씨(安氏)는 꼭 내 자식(子息)만 같아.”라고 할 만큼 노인(老人)들을 위해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었다. 

노인공경(老人恭敬)하는 마음이 너무나 극진했다. 

“노인(老人)들은 모두가 제 아버님이십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안씨(安氏)의 그 한 마디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어느 노인(老人)의 칭찬(稱讚) 그대로 안씨(安氏)는 그야말로 만인(萬人)의 효자(孝子)였다. 그가 베푼 물질적(物質的)인 선행(善行)도 컸거니와 그보다도 그의 이와 같은 마음이, 노인(老人)들의 눈시울을 모두 뜨겁게 해 주었던 것이니 그의 갸륵했던 행실(行實)을 알 수 있으리라. 

그가 심어 놓은 경로사상(敬老思想)의 뿌리는 이제 온 마을 구석구석까지 퍼져 안씨(安氏)가 살고 있는 마을을 “효자(孝子)동(洞)이라고 부를 만큼, 그가 뿌려 놓은 효(孝)의 씨앗들은 여기저기서 싹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야, 이 녀석아 안씨(安氏)를 좀 본받아 봐라, 안씨(安氏)를 좀 닮아 보라구!”이와 같이 말을 하면서 안씨(安氏)의 선행(善行)을 극찬(極讚)했을까. 

효자(孝子) 집에 효자(孝子) 난다는 말도 있듯이 그의 자녀(子女)들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程度)로 모두가 차분하게 효(孝)의 길을 걷고 있다니, 이 또한 얼마나 가상(可賞)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