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이순희(李順姬) 여사(女史)는 구미시(龜尾市) 신평(新坪)2동(洞) 부녀회(婦女會) 부회장(副會長)으로서, 평소(平素) 근검절약(勤儉節約)을 신조(信條)로 삼고 생활(生活)하면서 넉넉한 살림은 못되지만 3남매(男妹)와 남편(男便)의 뒷바라지에 여념(餘念)이 없으면서도 경로당(敬老堂)과 양로원(養老院)을 찾아 노인(老人)들을 위로(慰勞)하기를 즐겨 하였다.
그가 이웃사랑의 마음과 노인공경(老人恭敬)의 정신(精神)을 행동(行動)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평소 경로당(敬老堂)의 청소(淸掃)를 실시(實施)함을 비롯하여 방석을 깨끗이 세탁(洗濯)하여 드림으로써 황혼기(黃昏期) 노인(老人)들을 흐뭇하게 해드리고, 1980년(年) 구정(舊正)때는 실 18타래를 구입(購入)해서 손수 짠 마스크 50개를 관내(管內) 청소부(淸掃夫)들에게 나누어 주어, 추위에 고생하는 나이가 지긋한 청소부(淸掃夫)들의 사기(士氣)를 드높인 일로부터였다.
그 자신(自信)의 살림은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평소 근검절약(勤儉節約)한 돈으로, 노인(老人)들에게 따뜻한 선물(膳物)을 안겨 주는 그의 놀라운 정성(精誠)은 누가 보아도 칭찬(稱讚)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이런 일은 처음에는 사시적(邪視的)으로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여사(李女史)는 그러한 일부(一部) 오해(誤解)와 몰이해(沒理解)에는 개의(介意)하지 않고, 동네의 불우(不遇)한 노인(老人)을 위하여 그의 정성(精誠)을 다 바쳤다.
1981년(年)은 이여사(李女史)의 노인(老人) 공경심(恭敬心)이 아낌없이 드러난 한 해였다.
무더운 여름에 자신(自身)의 주머니를 털어 경로당(敬老堂)에 돗자리를 깔아 주었고, 알뜰시장(市場)을 열어 이익금(利益金) 18,000원으로 과실(果實)과 주안(酒案)을 마련하여, 노인(老人)들이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신평(新坪) 2동(洞) 37번지(番地)에 거주(居住)하는 외로운 할머니에게 한복(韓服) 한 벌을 마련해 드렸고, 한가(閑暇)한 날에는 몸소 고깃국을 끓여 식사(食事)까지 대접(待接)해 드리는 등 노인공경(老人恭敬)하는 일은 그칠 줄 몰랐다.
이러한 이여사(李女史)의 진실(眞實)된 마음에 감동(感動)한 동리(洞里)의 노인(老人)들은, 그 녀(女) 대하기를 친딸과 같이 하였다.
한 번은 이여사(李女史)가 고추꼭지를 따서 품삯으로 받은 10만(萬)원으로 베개 83개를 마련하여 선산(善山) 양로원(養老院)에 기증(寄贈)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어느 할머니는 "이 베개를 베고 자면 천년만년(千年萬年) 장수(長壽)하겠구먼!"하고 기뻐했으며 마스크를 선물(膳物)했을 때는 "따뜻한 마스크를 입가에 가져갈 때마다 젊은 새색시의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리라"고 감사(感謝)의 뜻도 전(傳)하였다.
이여사(李女史)는 이와 같은 꾸준한 활동(活動)으로 1981년(年) 12월(月)에 구미시장(龜尾市長)으로부터 선행표창(善行表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여사(李女史)는 그것을 자랑하기보다는, 아무 한 일도 없는 자신(自身)에게 돌아온 상(賞)을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더욱 노인공경(老人恭敬)의 실천(實踐)을 앞장서 행(行)하겠다고 다짐하였다.
- 이전글제25회 독행상(篤行賞) 우창호(禹昌鎬) 25.05.16
- 다음글제25회 독행상(篤行賞) 장팔근(張八根) 2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