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김도현군(金桃賢君)은 평소 성실(誠實)하고 모범적(模範的)인 학생(學生)으로서, 학교(學校)에서는 급우(級友)들의 신망(信望)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가정(家庭)과 마을에서는 효도(孝道)하는 학생(學生), 예절(禮節)바른 학생(學生)으로서 칭찬(稱讚)이 대단하다.
그의 가정(家庭)은 소규모의 양계장(養鷄場)을 경영(經營)하여 전가족(全家族)의 생계(生計)를 이어가고 있는 탓으로, 가정(家庭)살이는 언제나 여유(餘裕)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김군(金君)은 양계장(養鷄場)의 바쁜 일손을 도와 주기 위해, 학교(學校)에서 돌아온 즉시 양계장(養鷄場)으로 달려가 사료(飼料)주기를 비롯하여 계사(鷄舍) 청소(淸掃)등 넉넉히 한 사람 몫의 일을 도맡아 하면서 가사(家事)를 돕고 있다.
특히 지난 해 그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석(病席)에 누워 있었을 때에는,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면서 병간호(病看護)에 전념(專念)하였으며, 어머니를 대신(代身)하여 집안의 궂은 일을 맡아 하였다.
이런 어려운 환경(環經)속에서도 밤으로는 시간(時間)틈틈이 동생들이 공부(工夫)를 도와주어 학업성적(學業成績)을 향상(向上)시켰고, 그 자신(自身)도 식구(食口)들이 잠든 밤과 새벽을 이용(利用)하여 학업(學業)에 정진(精進)한 결과, 700여평(餘坪)의 학생(學生)들 가운데서 100위권(位圈)에 드는 우수(優秀)한 성적(成績)을 보여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학급(學級)에서 부실장(副室長)이기도 한 김군(金君)은, 매사(每事)에 솔선수범(率先垂範)함으로써 급우(級友)들의 신망(信望)이 두터우며, 어린 소년(少年)답지 않게 학급(學級)에서 궂은 일은 혼자서 도맡아 할 만큼 학급(學級)을 사랑했으며 어쩌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학생(學生)이 있으면 언제나 나누어 먹을 만큼 학우(學友)들 돕는 우정(友情)또한 두터웠다.
김군(金君)의 또 하나의 모범적(模範的)인 태도(態度)는 그의 근면성(勤勉性)에도 있다.
졸업(卒業)을 앞둔 지금까지 단 하루도 결석(缺席)을 하거나 지각(遲刻)을 한 일이 없으며 다른 급우(級友)들보다 30분(分) 일찍 등교(登校)하고 30분(分) 늦게 하교(下校)하며, 그 시간(時間)을 이용하여 성적(成績)이 불량(不良)한 급우(級友)들의 학업(學業)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군(金君)은 비단 학교(學校)에서뿐아니라 매주(每週) 일요일(日曜日) 아침에는 조기청소(早起淸掃)를 실시(實施)하여 마을의 환경미화(環境美化)에도 일익(一翼)을 담당하였다.
그 여파(餘波)로 지금은 일요일(日曜日) 아침이면 집집마다 비를 들고 마을 구석 구석을 청소(淸掃)하는 미풍(美風)이 생기게 되었다.
'백(百) 마디의 말보다 한 가지의 실천(實踐)'을 자신(自身)의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있는 김군(金君)은,
1981년(年)에는 우등상(優等賞)과 개근상(皆勤賞)은 물론이요, 효행상(孝行賞)까지 수상(受賞)하였으며, 요즘에는 보기 드문 자랑스런 학생(學生)이라는 주위(周圍)의 칭찬(稱讚)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
- 이전글제25회 독행상(篤行賞) 소병조(蘇秉祚) 25.05.16
- 다음글제25회 독행상(篤行賞) 이춘자(李春子) 2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