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홍순갑(洪順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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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1981년 4월 11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봉화군 법전면
열부(烈婦) 홍순갑(洪順甲) 46세

홍순갑(洪順甲)여사(女史)는 그의 나이 18세(歲) 때 소아마비(小兒痲痺)로 반신불수(半身不隨)이고 나이도 21세(歲)나 위인 남자(男子)에게 속아서 시집을 간 불행(不幸)한 여성(女性)이었다. 

남편(男便)이 불구자(不具者)였다는 것도 감쪽같이 몰랐지만, 나이가 그 여(女)보다 21년(年)이나 위인 39세(歲)라는 사실(事實)에 홍여사(洪女史)는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아서 결혼(結婚)한 것이 너무나 억울하여, 매일(每日)같이 눈물로 신혼기(新婚期)를 넘긴 그는,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서 결혼(結婚)을 물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모든 것을 팔자소관(八字所關)으로 돌리고 불쌍한 남편(男便)을 도와 주자.' 이와 같이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날부터 우선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 품팔이 일터에 나가서 열심(熱心)히 일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반신불수(半身不隨)인 남편(男便)을 위해 정성(精誠)을 다 바쳐 알뜰히 보살펴 주었다. 

홍여사(洪女史)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매일(每日)같이 뼈가 부서지도록 땀 흘려 일했지만,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은 정도(程度)로 그의 생활(生活)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뿐이면 또 괜찮았겠는데 남편(男便)의 행패(行悖)까지 뒤따랐다. 

별다른 이유(理由)없이 가재도구(家財道具)를 때려부수는가 하면 무턱대고 손찌검을 하기도 했지만, 홍여사(洪女史)는 불구자(不具者)가 흔히 느끼는 열등의식(劣等意識)에서 오는 과민성(過敏性)이려니 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편(男便)을 이해(理解)하곤 하였다. 

남편(男便)의 행패(行悖)가 오죽심(甚)했으면, 주위(周圍)사람들까지 "밤낮 억울하게 당하지만 말고 도망가서 새 낭군(郎君)을 얻고 살아라."라는 동정(同情)어린 충고(忠告)까지 나왔으랴. 

그럴 때마다 홍여사(洪女史)는 "좋아도 내 남편(男便)이요, 미워도 내 남편(男便)이다."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종전(從前)보다 더 남편(男便)을 하늘처럼 여기면서 알뜰히 섬겨 나갔다. 

마침내 동리(洞里)사람도 감동(感動)한 나머지 홍여사(洪女史)의 열행(烈行)에 찬사(讚辭)와 박수(拍手)를 보내면서 서로가 다투어 양식(糧食)을 보태 주기도 했고, 또한 품삯도 남보다 조금씩 더 올려서 지급(支給)하는 등, 그를 아끼고 이해(理解)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歲月)이 흐르면서 이들에게도 7명(名)의 자녀(子女)가 생겼고, 그 동안 밤낮없이 일을 해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지난 1968년(年)에는 조그마한 도정공장(搗精工場)까지 마련했지만, 그 사업(事業)도 여의(如意)치 않아 2년 후(年後)에 다시 문(門)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홍여사(洪女史)는, 손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여 남편(男便)뒷바라지와 자녀교육(子女敎育)에 전심전력(全心全力)을 해 왔다. 

불구(不具)인 그의 남편(男便)도 지금에 와서는 아내의 거룩한 희생정신(犧牲精神)과 봉사정신(奉仕精神)에 감동(感動)이 되어 새 사람의 길을 걷고 있다. 

홍여사(洪女史)야말로 '희생(犧牲)과 봉사(奉仕)' 바로 이 다섯 자(字)를 실천(實踐)해 온 현모양처(賢母良妻)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