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최경석(崔庚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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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1981년 4월 11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구미시 원평동
열부(烈婦) 최경석(崔庚錫) 53세

최경석(崔庚錫)여사(女史)는 고난(苦難)의 길 30년(年) 긴 세월(歲月)을 눈물로 걸어온 화제(話題)의 주인공(主人公)이다. 

그는 비록 17세(歲)의 어린 나이에 결혼(結婚)했지만, 어린 색시답지 않게 목수(木手)인 남편(男便)을 하늘처럼 섬길 줄도 알았고, 자녀(子女)를 낳아서 키울 때도 어머니의 길을 차분하게 지켜 나가는 법(法)도 알고 있어, 항상 주변(周邊)에서 많은 칭찬(稱讚)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6.25 사변(事變) 이듬해에 남편(男便)이 공사장(工事場)에서 불의(不意)의 추락사고(墜落死고)를 당(當)해, 하반신(下半身)을 못쓰는 불구자(不具者)가 되면서부터 이 가정(家庭)에도 먹구름이 뒤덮기 시작하였다. 

목수(木手)일을 해서 생계(生計)를 꾸려오던 남편(男便)이 하반신불구(下半身不具)로 활동(活動)을 못하게 됨에 따라, 당장 생활(生活)에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가정주부(家庭主婦)에서 하루아침에 여가장(女家長)으로 변신(變身)한 최여사(崔女史)는, 그 날부터 보따리를 둘러메고 행상(行商)길에 나서서 모진 세파(世波)와 싸워 나갔다.

그러던 중 남편(男便)이 사고(事故)를 당(當)한 지 1년(年) 후(後)에는 막내 아들마저 소아마비(小兒痲痺)로 불구(不具)가 되는 비운(悲運)을 맞게 되었다. 

그러니까 하반신(下半身)을 못쓰는 불구자(不具者)가 둘로 늘어난 셈이다. 

최여사(崔女史)는 운명(運命)의 장난을 원망(怨望)하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울어 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問題)가 해결(解決)되는 것도 아니어서 슬픔을 딛고 과감(果敢)히 일어나, 다음 날부터 건축공사장(建築工事場)을 전전(轉轉)하는 한편 연탄배달(煉炭配達), 날품팔이 노동(勞動), 이 밖에 행상(行商)등으로 피눈물 나는 고난(苦難)의 길 30년(年)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30년간(年間)을 하루같이 남편(男便)을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면서, 그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마음이 되기도 해 온 최여사(崔女史)는, 또 한편으로는 소아마비(小兒痲痺)로 불구(不具)가 된 막내아들을 위해서도 그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마음이 되어 주었다. 

최여사(崔女史)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 줄 때마다, 그의 남편(男便)은 가슴이 뭉쿨해 하면서 "고맙소, 미안하오. 정말....."이와 같이 말하면서 진심(眞心)으로 사의(謝意)를 표(表)했지만, "그런 말씀은 입밖에도 내지 마세요. 당신(當身)은 이 세상(世上)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저의 태양(太陽)이 아니우."하면서 최여사(崔女史)는 오히려 불구(不具)의 남편(男便)을 따뜻하게 위로(慰勞)하곤 했다. 

최여사(崔女史)는 온갖 고난(苦難)과 역경(逆境)에도 불구(不拘)하고 자녀(子女)들도 훌륭하게 키워 나갔다. 

장남(長男)은 경북대학교(慶北大學校) 대학원(大學院)을 졸업(卒業)한 후(後) 현재(現在) 경주대학(慶州大學)에서 교수생활(敎授生活)을 하고 있는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나 할까, 장남(長男) 역시 지극(至極)한 효자(孝子)로서 제주도(濟州道)에서 하루가 멀다 할 정도(程度)로 문안전화(問安電話)를 할 만큼 그의 효심(孝心)은 깊고 두텁기만 하였다. 

고생(苦生)을 낙(樂)으로 알면서 30년간(年間)의 고통(苦痛)을 하루같이 살아온 최여사(崔女史),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남편(男便)과 아들을 위해 평생(平生)을 몸바쳐 온 그의 갸륵한 열행(烈行)과 사랑은, 모든 여성(女性)들이 본받아야할 살아있는 참 교본(敎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