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조순향(安季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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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1979년 4월 14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시 북구 노원동
효부(孝婦) 조순향(安季蓮) 42세

가난한 농가(農家)에서 태어난 조순향(曺順香) 여사(女史)는, 어릴 때부터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한 효녀(孝女)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조여사(曺女史)는 6.25 동란(動亂) 때 얻은 병(病)으로 항상 병석(病席)에 누워 있는 모친(母親)을 도와, 15세(歲)때부터 집안살림을 맡아 하면서 양친(兩親)을 극진히 봉양(奉養)해 오다가 22세(歲)되던 해에 결혼(結婚)하였는데, 남편(男便)은 남달리 술을 좋아하는 것까지 좋았으나, 술로 인(因)한 탈선사고(脫線事故)가 하루 건너 한 번씩 터질 정도로 주벽(酒癖)이 심(甚)하였다. 

이로 인(因)해 가정형편(家庭形便)은 더욱 도탄(塗炭)에 빠졌으며, 국수와 죽으로 연명(延命)해 나가는 일이 몇 해를 이을 정도(程度)로 가난의 꼬리는 무한(無限)히 길기만 하였다. 

그러나 조여사(曺女史)는 이에 조금도 굴(屈)하지 않고, 여기저기 채소밭을 누비면서 품팔이를 했는가 하면, 산나물을 뜯어서 팔기도 했는데, 그런 고생(苦生) 중(中)에서도 시부모(媤父母)님께는 수시(隨時)로 술과 고기를 대접(待接)하는 등 성심성의(誠心誠意)를 다해 봉양(奉養)하였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가장 괴롭혔던 일은, 품팔이를 해서 벌어 온 돈이나 또는 채소를 팔아 온 돈을 온갖 행패(行悖)끝에 탈취(奪取)하여 술과 바꿔 먹는 남편(男便)의 끝없는 주벽(酒癖)이었다. 

남편(男便)의 주벽(酒癖)이 오죽했으면 당장 저녁밥을 지어야 할 쌀값까지 송두리째 빼앗아 술집을 찾아가기까지 했으랴? 

남편(男便)은 끝내 술로 말미암아 폐인(廢人)이 되고 그로 인(因)해 생명(生命)까지 잃게 되었는데, 죽는 순간(瞬間)까지도 술 한 잔만 달라고 간청(懇請)할 정도로 술이 그를 망쳤고 가정(家庭)까지 망쳐 놓았다. 

남편(男便)이 죽은 후(後)에도 조여사(曺女史)는 마음 평안(平安)할 날이 없었으니, 소아마비(小兒痲痺)로 다리가 불구(不具)인 13세(歲)의 막내딸의 뒷바라지와 그를 비롯한 4명(名)의 자녀(子女)를 키우는 일, 그리고 웃어른을 모시는 일이었다. 

남편(男便)과 사별(死別)한 조여사(曺女史)는 얼마 후(後) 2평(坪)남짓한 구멍가게를 보며 어렵기만 한 살림살이를 가까스로 메워 나갔다. 

그러면서, 이제 홀로 생존(生存)에 계신 시모(媤母)님과 홀로 사시는 77세(歲) 시숙부(媤叔父)님을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봉양(奉養)했는데, 아무리 가난에 쫓기는 일이 있어도 시모(媤母)님과 시숙부(媤叔父)님 밥상에는 하다못해 생선(生鮮) 반 토막이라도 꼭 올라갔고, 때때로 막걸리를 사다가 극진히 대접(待接)하는 등, 그가 펼 수 있는 효(孝)의 날개는 모두 펼쳐져 알뜰히 봉양(奉養)하였다.

비록 그는 가난 속에서 하루 하루를 이어가긴 했지만, 성품(性品)이 단정(端正)하기 한결같았으며 성실(誠實)하고 의젓해서 오로지 덕(德)으로 행동(行動)하였는데, 바로 그 효심(孝心)이 마을 사람들 특히 웃어른들을 대(對)하는 그의 경로효친(敬老孝親)이었다. 

노인(老人)들에 대(對)해 남달리 예의범절(禮儀凡節)도 밝았으며, 특히 인근(隣近)에 외로운 노인(老人)이 기거(起居)하면 수시(隨時)로 찾아가서, 마음으로나마 외로움을 달래 드리기도 했는데, 그 동경(憧憬)이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했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중론(衆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