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김종면(金種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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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1978년 4월 2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안동시 송현동
선행(善行) 김종면(金種眠) 60세

간이서점(簡易書店)을 경영(經營)하고 있는 김종면씨(金鍾眠氏)는, 남달리 내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애향심(愛鄕心)과 경로사상(敬老思想)이 투철(透徹)한 모범시민(模範市民)으로서, 지금껏 그는 불우(不遇)이웃 돕기와 사회봉사 운동(社會奉仕運動)등 알게 모르게 많은 사회사업(社會事業)을 실천(實踐)하여 내무부장관(內務部長官), 치안국장(治安局長) 그 밖에 각계(各界) 인사(人士)로부터 감사장(感謝狀)과 표창장(表彰狀)을 받은 숨은 새마을 일꾼이다. 

중요(重要)한 공적내용(功績內容)을 보면, 그 자신(自身)혼자서 야간순찰(夜間巡察)을 실시(實施)하여, 범죄예방(犯罪豫防)과 청소년선도(靑少年先導)에 힘써 1968년(年) 10월(月)에 안동경찰서장(安東警察署長)으로부터 감사장(感謝狀)을 받았고, 안동시(安東市) 송현동(松峴洞) 사회정화위원(社會淨化委員)으로 있으면서 가정의예준칙(家庭儀禮遵則) 및 정부홍포활동(政府弘報活動)에 많은 협조(協助)를 한 공로(功勞)로, 1970년(年) 8월(月)에는 내무부장관(內務部長官)의 감사장(感謝狀)을 받은 바 있다. 

특(特)히 그는 전과자(前科者)들인 유모(柳某). 김모(金某), 임모(林某)등 3명(名)이 출감 후(出監後)에도 냉대(冷待)를 받고 있다는 사실(事實)을 알고, 자기(自己)집으로 데려가 친자식(親子息)처럼 사랑하면서 동거(同居)를 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돈을 들여 결혼(結婚)까지 시켜 주는 등, 친부모(親父母)에 버금가는 인간애(人間愛)를 발휘(發揮)하여, 그 공적(功績)으로 치안국장(治安局長)의 감사장(感謝狀)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송현국민학교(松峴國民學校) 육성회(育成會) 부회장(副會長)으로 있으면서 학교(學校)가꾸기 사업(事業)에도 앞장선 바 있는데, 운동장(運動場)의 정지작업(整地作業)과 학교후문(學校後門) 건립(建立) 등 많은 실적(實績)을 남긴 공로(功勞) 1973년(年)에는 안동시(安東市) 교육장(敎育長)의 감사장(感謝狀)을, 그리고 1977년도(年度)에는 송현국민학교장(松峴國民學校長)으로 부터 각각 감사장(感謝狀)을 받은 바 있다. 

그의 행적(行績)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안동시(安東市) 송현동(松峴洞) 모래골 이웃회장으로 있을 당시(當時)는 의지(依支)할 때 없이 구걸생활(求乞生活)을 하고 있는 지한수 노인(老人)에게, 자재(資材)를 거두어 집 한 채를 지어 주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어느 해 겨울, 오갈 데 없는 고아(孤兒)를 자기(自己) 호적(戶籍)에 입적(入籍)시켜 인자(仁慈)한 사랑으로 지금껏 한 집에서 살고 있다.

한 때 그가 세인(世人)들이 기피(忌避)하는 전과자(前科者) 3명(名)과 동거생활(同居生活)을 하고 있을 무렵, 몇몇 주변(周邊) 사람들로부터 항상(恒常) 조심하고 경계(警戒)해야 한다는 충고(忠告)의 말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믿으면 누굴 믿고 살겠느냐?"고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반박하면서, 그들의 충고(忠告)를 보기 좋게 외면(外面)해 버렸다고 한다. 

그가 3명(名)의 전과자(前科者)에게 베푼 사랑은 그야말로 말로 다 형언(形言)할 수 없는 숭고(崇高)한 인간애(人間愛) 그것이었다는 것이, 그를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共通)된 찬사(讚辭)였다. 

그를 일생(一生) 은인(恩人)이며 대부(代父)로 생각하고 있는 3명(名)의 전과자(前科者)들도, 지금은 제 각기(各其) 자립(自立)하여 훌륭한 사회(社會)의 일원(一員)으로 활약(活躍)하고 있으며 수시(隨時)로 김종면씨(金鍾眠氏)를 찾아와서 참된 인간(人間)의 새 출발(出發)의 참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저의 저주(詛呪)하는 사람을 위하여 축복(祝福)하고, 너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善)을 베풀라." 

이것이 바로 그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고 평생(平生)동안 실천(實踐)해야 할 좌우명(座右銘)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