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금이(吳今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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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1958년 3월 7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達城郡) 옥포면(玉浦面) 본리동(本里洞) 795
효부(孝婦) 오금이(吳今伊) 27세

겨우 끼니를 잇는 가난한 집에 시집을 오자마자 남편이 군에 입대(入隊)하여 어려운 살림살이를 오씨가 떠맡아야 했다.

70세의 노시모(老媤母)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힘든 농사일 외에도 품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6.25사변 직후에는 생활이 어렵고 일거리가 없어 걸식(乞食)을 하면서 노시모(老媤母)를 공양하기도 했다.

시집온 지 2년 후에는 불행하게도 오른쪽 발목에 조그만 종기가 나더니 힘든 일에다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해 크게 번져 다리 하나를 못 쓰는 불구가 됐다.

입대 후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불편한 몸으로 노시모(老媤母)의 공양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젊은 나이에 남편 없는 시가(媤家)에서 너무 비참한 고생을 겪는다고 취직자리를 알선해 주었으나 늙은 시모 곁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해 마을 주민들로부터 효부(孝婦)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

현재 논 2마지기를 직접 경작하면서 농사일, 시모(媤母) 모시기, 가사(家事) 등 1인 3역을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