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임이(朴任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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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1958년 3월 7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시(大邱市) 진천동(辰泉洞) 2구(區)
효부(孝婦) 박임이(朴任伊) 63세

가난한 살림 속에서의 효(孝)는 그만큼 더 힘이 들며 반면 그 효(孝)는 빛이 더 나게 된다.

朴씨도 17세에 가난한 宋씨 집에 시집을 온 후 평생을 고난과 역경 속에서 효(孝)의 정신을 실천한 효부(孝婦)이다. 朴씨의 부모에 대한 효성은 남편이 갑작스럽게 숨진 후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지극해졌다.

남편 宋씨는 결혼 10년 만에 모내기를 하고 돌아온 후 열이 나며 심한 설사를 하기 시작하더니 자리에 누운 후 2년간이나 회복을 못한 채 투병(鬪病)하다 끝내 세상(世上)을 떠났던 것이다. 불행은 계속 겹쳐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던 시부(媤父)까지 자리에 눕더니 3년 만에 또 상(喪)을 당해야 했다.

朴씨는 이중(二重)의 슬픔이 겹쳤는데도 절망하지 않고 3년간 육식(肉食)을 금하고 농담과 웃음을 금하는 등 시부(媤父)에 대한 사후 효성을 다하였다.

지난해에는 장남(長男)과 자부(子婦)마저 잃은 불행을 겪었으나 인내(忍耐)하면서 93세의 노시모(老媤母)를 극진하게 봉양하고 있다.

매일 아침 문안(問安)을 올리고 잠자리를 손수 깔아드리는 효성(孝誠)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