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필만(金畢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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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1967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영주군 문수면 벌석리
효부(孝婦) 김필만(金畢만) 38세

결혼생활 3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6.25사변이 터지던 날 전방부대에 배치됐던 남편은 「잘 도착했다」는 편지를 띄웠으나 아내에게 배달되기 전에 전사(戰死)했다. 

자식을 얻지 못한 金씨는 오직 고령의 시부(媤父)에 의지해 어려움을 이겨냈다. 

80세의 시부(媤父)는 20대의 젊은 며느리를 붙잡을 면목이 없다면서 재혼할 것을 권유했으나 「여자가 한번 결혼하면 그 가문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며 노시부(老媤父)를 극진하게 봉양했다. 

그녀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남편의 전사연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 재산을 일구었다. 

결혼 당시 5백 평뿐이었던 전답(田畓)이 2천 4백 평으로 늘어났으며 시부(媤父)는 80고령인데도 며느리의 극진한 봉양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만년(晩年)을 즐기고 있다. 

지난해 여름 시부(媤父)가 심한 병으로 한 달 간 병석에서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다. 갖은 약과 의사들을 불러 시부(媤父)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으나 점점 악화됐으며 의사들도 포기상태였다. 

그녀는 아직 벼가 익지 않았으나 돌아가시기 전 시부(媤父)에게 햅쌀밥을 공양해야 된다며 덜 익은 벼를 베어서 삶아 말려 햅쌀밥을 공양했다. 

그녀의 정성으로 시부(媤父)는 건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