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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1967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금릉군 귀성면 하원리
효부(孝婦) 노온혜(盧溫兮) 67세
19세에 결혼했을 때 남편은 15세의 중학생이었다.
재산이라고는 천수답(天水畓) 2두락(斗落)이 전부였으나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은 시부(媤父)는 남편을 도시학교에 유학시키고 있었다.
노(盧)씨는 결혼 직후부터 남편의 학비와 시부모(媤父母) 봉양에 필요한 생계비를 벌어야 했다.
삯바느질, 방아품, 삼을 삶아주는 품팔이 등 여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해냈다.
오직 남편의 성공을 빌며 갖은 고생을 참아 남편이 왔으나 3.1운동의 주동 역할을 했던 남편이 일경(日警)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폐인이 되어 돌아와 그 동안의 고생이 허무하게 무너져감을 느끼게 했다.
남편은 딸 하나를 남겨준 채 다음 해 숨졌다.
22살의 청춘에 남편을 잃은 盧씨는 노시부모(老媤父母)와 딸을 위해 그 동안 해낸 고생보다 더 힘든 고행을 30년 동안이나 계속해야 했다.
일제(日帝)의 혹심한 식량난 때와 6.25사변 등 여인의 힘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을 극복해 냈다.
70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이면서도 현재 90세의 시부(媤父)를 알뜰하게 봉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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