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장효임(長孝任)

페이지 정보

본문

제11회(1968년 3월 28일)
독행상(篤行賞)
칠곡군 북삼면 오태동
효부(孝婦) 장효임(長孝任) 53세

남편 김만천(金萬千)씨는 일제(日帝)시대 강제징용으로 일본(日本) 구주(九州)탄광에 끌려가 해방직전 폭격으로 타국(他國)에서 타계(他界)하는 비운을 맞았다. 

10년 동안이나 남편대신 9식구의 생계를 꾸려 나왔던 장(張)씨는 해방과 함께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절망하지 않고 힘겨운 생활을 개척해 나갔다. 

재산이라고는 쓰러져가는 초가 3칸이 전부였던 장(張)씨는 가까스로 이웃으로부터 소작 논 6백 평을 얻어 생계수단으로 삼는 한편 품팔이 노동으로 자녀들의 교육비를 벌었다. 

그녀가 시부모(媤父母)에게 공경을 다 한만큼 시부모(媤父母)도 며느리를 열심히 도왔다. 

장(張)씨는 아무리 먼 지역에까지 품팔이 일을 나갔더라도 자기에게 제공된 더운 음식과 별식을 반드시 챙겨 시부모(媤父母)에게 공양하곤 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돈을 절약해 봄, 가을철 시부모(媤父母)여행을 주선해주고 있으며 간혹 약을 구해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자신의 영화를 돌보지 않고 화목한 가정과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밤낮으로 일에 열중하고 있는 효부(孝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