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진탁(李鎭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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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1968년 3월 28일)
독행상(篤行賞)
월성군 안강읍 산대리
효부(孝婦) 이진탁(李鎭卓) .

남편 권오인(權五仁)씨는 천선꾼 부농의 장남이었다. 

18세에 출가하여 3년 동안은 행복한 신혼을 보낼 수 있었으나 남편이 일제(日帝)의 강제징용에 끌려 일본(日本)으로 건너간 후 가산은 하루하루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부(媤父)가 시작한 사업이 실패를 하게 돼 결혼 5년 만에 부농의 가산은 알거지로 몰락하는 비운을 겪게 됐다. 징용으로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면서 효(孝)씨는 시부모(媤父母)를 따라 울릉(鬱陵)도까지 전전해야 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힘겨운 생활 속에 남편의 귀환을 고대하며 시부모(媤父母)를 극진하게 봉양했으나 해방을 맞았는데도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고난을 견디어 내지 못한 시부(媤父)는 해방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채 45년 병사(病死)해 시모(媤母)와 단둘이 남겨진 이 (李)씨는 다시 육지로 건너와 새 생활을 시작했다. 

힘겨운 중노동에 시달려온 이(李)씨는 심한 척추 병을 앓아 꼽추가 되었으며, 시모(媤母)는 지난 62년부터 중풍으로 누워 있다. 

이(李)씨는 불구 의 몸이면서도 중노동으로 생계비를 벌면서 병든 시모(媤母)를 효성(孝誠)으로 봉양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