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쾌남(趙快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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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1968년 3월 28일)
독행상(篤行賞)
청송군 부동면
효부(孝婦) 조쾌남(趙快男) 41세

16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 했을 때 모셔 야할 어른이 시조모(媤祖父), 시부모(媤父母),시삼촌(媤三寸)등 4명이나 됐다. 

외동딸로 어려서부터 부모(父母)를 효성(孝誠)으로 받들어온 그녀는 결혼 후에도 웃어른들에게 효성(孝誠)이 지극하고 친지간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어른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다. 

소작농(小作農)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조(趙)씨의 가정에 6.25동란이라는 비극이 덮쳐왔다. 

당시 경찰관이었던 시삼촌(媤三寸)이 공비들의 습격으로 살해당했으며, 군에 입대한 남편도 전사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두 기둥을 한꺼번에 잃은 시조모(媤祖父), 시부모(媤父母)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후 거동을 못한 채 5년간을 누워서 보냈다. 

환자 세 사람의 식사공양은 물론 대소변 받아내는 생활이 계속되었으나, 조금도 불평 없이 지성으로 간호하고 산과 들을 헤매어 약초를 채취, 세 환자 치료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趙)씨의 극진한 간호의 보람도 없이 시조모(媤祖父)는 발병 5년 후에, 시부(媤父)는 6년 만에 타계(他界)했으며 겨우 시모(媤母)만 완치 시킬 수 있었다. 

시모(媤母)와 1남 2녀의 생계를 위해 현재 행상을 하고 있는 그녀는 그 동안 알뜰하게 저축해 5백 평의 전답(田沓)까지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