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김상분(金相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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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1969년 4월 26일)
독행상(篤行賞)
영천군 고경면 상덕동
효부(孝婦) 김상분(金相分) 37세

맏시숙이 병사하자 맏동서는 그 동안 모셔오던 병든 시부(媤父)를 팽개쳐 버리고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가난한 살림 중에서도 시부(媤父)를 떠맡아 극진하게 봉양해 왔다. 

남편 강(姜)기수 씨는 가난을 이겨보겠다며 가출, 강원도(江原道)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편지만 보내올 뿐 생계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시부(媤父)는 중풍(中風)과 관절염 증세로 누워서만 보내는 중환자였다. 

김(金)씨는 시부(媤父)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낮에는 산에 올라 떌나무를 해다 팔아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삯 바느질 등으로 시부(媤父)약값을 마련했다. 

이웃에 경사가 있을 때는 반드시 엎고 다니며 구경을 시켰으며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시부(媤父)방을 찾아 위로와 격려 말을 하곤 했다. 

얼마 되지 않는 농토를 경작해 양식을 마련해 오던 시동생마져 돈 벌겠다며 대구(大邱)로 떠나 힘겨운 농사일까지 맡아야 했다. 

남편은 10년 만에 빈손으로 알거지가 되어 돌아왔다. 

김(金)씨의 효행(孝行)에 감동한 마을주민들이 김(金)씨를 표창하자 군수 및 기관장들이 금일봉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