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승희(吳曾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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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1970년 4월 10일)
독행상(篤行賞)
봉화군 봉성면 원둔리
효부(孝婦) 오승희(吳曾熙) 57세

남편은 30살의 나이에 공부하겠다며 일본(日本)유학을 떠났다. 

오(吳)씨 나이 28세 때 남편과 헤어진 후 해방을 맞아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고 소식을 끊어 평생을 외동딸과 시부모(媤父母)를 가난 속에서 돌보아야 하는 고행을 계속하고 있다.

18세 때 결혼 10년 동안 남편과 행복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 오(吳)씨에게는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것이다. 

시부(媤父) 이필동(李弼東)씨는 원래 시골부호로 면(面)에서는 손꼽히는 부농이었다. 

그러나 일본(日本)유학중인 남편의 학비와 생활비로 해마다 재산이 축이 나 해방을 맞을 때 5년 동안에 전 재산의 80%가 탕진되었다. 

재산을 탕진하면서 교육시킨 남편이 해방과 함께 소식을 끊자 시모(媤母)는 충격으로 앓아 누웠으며 시부(媤父)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외유(外遊)생활로 소일했다. 

4과락(科落)의 적은 농토였으나 오(吳)씨가 손수 경작해야 했으며 병든 시모(媤母)와 시부(媤父)를 돌보아야 했다.

남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그녀의 결심은 집안을 돌보지 않은 시부(媤父)에게 까지 외유(外遊)때마다 깨끗한 의복, 여비 등을 마련, 불편 없는 여행이 되도록 정성으로 받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