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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1970년 4월 10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시 남구 대명동
효부(孝婦) 김정자 45세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4세에 조(趙)덕수씨와 결혼했다.
남편 역시 가난한 농부였으나 근면하고 성실해 곧 가산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청년이기도 했다.
팽개쳐 지듯 어린 나이에 출가한 그녀에게 불행은 너무 빨리 닥쳐왔다. 패망 직전의 일제(日帝)는 최후 발악으로 남편을 노무자로 강제 징용해간 것이다.
7개월의 만삭의 몸으로 김(金)씨는 일본(日本)으로 끌려가는 남편을 눈물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부모(媤父母)와 유복자(遺腹子)를 떠맡은 김(金)씨는 살기 위해 고향을 둥지고 대구(大邱)로 이사했다. 김(金)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품팔이 노동과 행상 뿐이었다. 10대의 김(金)씨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견디어 냈다.
3년 전부터 고령의 시부모(媤父母)가 같은 날 중풍(中風)으로 자리에 눕게 돼 시부모(媤父母) 치료가 급했다.
하루 24시간을 노동하면서 치료비를 벌었다. 행상 도중에도 하루 10여 차례씩 집에 들러 시부모(媤父母)간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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