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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1971년 4월 8일)
독행상(篤行賞)
의성군 안계면 양곡동
효부(孝婦) 이임이(李任伊) 83세
이(李)씨의 효행(孝行)은 이조(李朝)말엽 유명했던 모성공회(慕聖公會)가 찬양문과 비문을 지어 보냈을 만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국의 유림 문사(文士)들이 지어 보낸 격려시와 격려문이 3권의 책으로 엮어지기도 했다.
이(李)씨는 17세 때 독자인 김록기(金祿起)씨에게 출가(出嫁)했다.
엄한 가훈(家訓)아래서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익힌 이(李)씨는 당시에 어느 지체 높은 가문에서도 손색이 없는 재덕(才德)을 갖춘 며느리였으나 남편을 제대로 보필해 보지도 못한 채 청상(靑孀)과부가 됐다.
남편은 결혼 6일만에 결혼 음식에 체해 처갓집에서 객사했던 것이다.
남편 장례를 치르면서 남편을 따라가기로 결심을 했으나 이를 눈치챈 시부모(媤父母)와 주위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李)씨는 오히려 내 한 몸 죽는 것보다 불쌍한 시부모(媤父母)를 평생동안 편안히 모시자고 결심하게 됐다.
시부모(媤父母)는 효성(孝誠)으로 받들고 있는 며느리를 볼 때마다 두 늙은이를 위해 자기인생을 버리고 있는 며느리를 붙잡을 수 없다며 재가(再家)를 권유했으나 그녀는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거절하곤 했다.
친정 부모의 누를 끼칠 것을 우려해 평생 동안 친정에 발을 끊고 시부모(媤父母)가 타계(他界)할 때까지 봉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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