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정자(李貞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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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1971년 4월 8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시 중구 대신동
효부(孝婦) 이정자(李貞子) 32세

19세에 결혼하여 5년간은 어려운 살림이었으나 시부모(媤父母)를 정성으로 받들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알뜰하게 돌보아 화목한 가정을 이끌 수 있었다. 

결혼한 후 2개월 만에 생계를 위해 행상을 시작 할 만큼 억척스럽게 살림을 이끌었다. 

독자로 자란 남편은 당장 끼니를 때울 수 없을 만큼 곤궁에 빠졌으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소일할 뿐 일을 하지 않아 이(李)씨가 5식구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다. 

시모(媤母)가 간경화증세로 적십자병원에 2개월간 입원하는 소동을 벌렸어도 다음해 시부(媤父)마저 급성내질환으로 별세(別世)하는 슬픔을 겪었어도 남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술과 여자로 놀아나기만 했다. 

시부모(媤父母) 중병을 치료하는 동안 그녀는 결혼 예물까지 모두 팔아 치워야 했으며 50만원의 빚까지 밤낮으로 3년 동안이나 고생을 이겨낸 후 빚을 갚을 수 있었다. 

25세 되던 해에 남편은 드디어 집을 나간 후 어떤 여인과 동거 생활을 시작, 가정을 외면했다. 

남편은 동거중인 여인과 정식 결혼을 하겠다며 이혼을 요구해 왔다. 

그녀는 가정 파탄을 막기 위해 외동딸과 시모(媤母)를 모시고 본가(本家)를 나와 셋방살이를 시작하면서 효성(孝誠)으로 시모(媤母)를 보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