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태희(李泰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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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1971년 4월 8일)
보화상(補化賞) 본상(本賞)
영주군 부석면 보계리
효부(孝婦) 이태희(李泰熙) 52세

여인의 집념은 무서운 것이었다. 

의학적으로 불치의 병으로 확인된 남편과 시모의 병을 10년에 걸친 끈질긴 집념으로 완치시킨 한 여인의 의지는 감동 그것이었다. 

이씨는 18세 때 김창계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조그만 정미소를 경영, 생활에 불편이 없는 중류의 가정을 이끌어왔다. 당시 부석면내에는 정미소가 2곳 밖에 없어 일거리가 쌓였으며 일손이 모자라 김씨 자신이 발동기를 돌려야 했다. 

재산도 크게 늘고 3명의 자녀까지 얻은 30대 후반기에 불행이 덮쳐왔다. 밤 늦게까지 정미소에서 작업을 하던 남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일꾼들의 등에 업혀 들어왔다. 작업 도중 과로로 발동기 위에 쓰러져 팔이 피대 줄에 말려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의식을 잃은 채 가냘픈 신음만 뱉어내고 있었다. 영주읍내 병원으로 급히 운반해 치료를 받게 했으나 병원 당국은 상처가 심해 정상적인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팔을 잘라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에 이 여인은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불구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울면서 애원할 수 밖에 없었다. 치료는 5개월간이나 계속되었다. 팔은 잘라내지 않아도 되었지만 완치가 되지 않아 매일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남편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이 통증을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진통이 심할 때 마다 병원을 찾아 진통제를 맞아온 그는 1년이 지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진통제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병원에서는 그의 중독증세를 경계해 진통제 주사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대신 이웃 사람이 알려준 아편은 뛰어난 진통효과를 주었다. 당시 농촌에서는 아편 재배가 성행해 아편 구하기는 쉬웠다. 불과 6개월 만에 아편 중독자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하루 두 차례씩 아편을 맞지 않으면 전신을 떨면서 발악을 했다. 정미소는 남편의 부상으로 이듬해 팔아 치웠으며 그 많던 재산도 마약중독자가 된 남편의 손에 하나 둘씩 주인이 바뀌기 시작했다. 

남편을 회복시키기 위한 이씨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하루 24시간 남편과 같이 보내면서 위로하고 상처를 치료했다. 주사기를 수 백 개나 깨서 치우기도 했다. 절망하고 있는 남편과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남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훌쩍 먼 여행길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마약중독증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 같은 와중에도 이씨는 질녀가 부모 없이 고아로 팽개쳐지자 데려다 자기 자식과 똑같이 길러내는 인간미를 보여 주기도 했다. 

시모의 중풍 발병은 이 같은 남편의 몰락에 충격을 받아 일어 난 것이었다. 폐인이 된 아들을 볼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시모가 어느 날 닭 모이를 주다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진 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시모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하루 세끼 식사를 떠 넣어 주어야 하는 고된 시련이 겹쳤으나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남편과 시모를 모셨다.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많던 재산은 모두 탕진되었으며 이제는 이씨가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조차 힘겨운 가난뱅이로 전락했다. 

이씨는 남편과 시모의 병 치료에 좋다는 약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서 구해오곤 했다. 3년 전 겨울이었다. 먼 친척 한 분이 찾아와 중풍증에는 겨울철에 눈 속에 살고 있는 뱀이 특효라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이씨는 다음날부터 겨울 뱀을 잡기 위해 새벽부터 산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9일만에 그녀는 소백산 속에서 뱀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씨의 효성에 감동한 신이 특별히 하사한 약이라고 감탄했다. 

생활에 쪼들리게 되자 이씨는 품팔이 노동과 삯바느질을 맡았다. 남편과 시모의 병시중을 들고 노동 품팔이를 하고 나면 하루 3시간 밖에 잘 수 없었다. 환자들의 몸보신을 위해 1년에 3마리의 개를 잡기도 했다. 병원에서 회복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남편이 2년 전부터 이따금 자신의 불행을 자각하고는 고통 받고 있는 팔을 잘라내 새사람이 되겠다고 울먹였다. 그는 아내의 뛰어난 효성과 열성에 감동해 더 이상 가족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굳은 신념만 있으면 팔을 잘라내지 않아도 마약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고 위로하고 남편의 투병에 오른팔이 되었다. 

남편은 잘 견디어 냈다. 폐인이 되었던 남편이 10년 만에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왔다. 

시모의 불치의 병도 겨울 뱀 덕분이었는지 해마다 조금씩 회복되더니 이제는 바깥 출입을 할 수 있을 만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치유되었다. 

가냘픈 여인의 힘이 폐인이 된 두 사람을 구해 새로운 행복을 찾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