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제16회(1973년 4월 10일)
독행상(篤行賞)
청송군 청송면 부곡동
열녀(烈女) 조용귀(趙鏞貴) 43세
어려서부터 효성(孝誠)이 지극했던 그녀는 부모의 명에 따라 17세에 출가했으나 결혼 2년 만에 남편과 사별(死別), 양자를 두어 가계(家系)를 잇고 수절로서 평생을 보내고 있다.
함안(咸安) 조(趙)씨 둘째 딸인 그녀는 친정이 매우 가난했었다.
그녀 나이 15세 때 이웃집 아픔이나 농번기에 농사일을 도와주고 점심 등을 얻어 먹게 되면 자신은 굶으면서 그 음식을 집에 가져와 병중의 부친께 드리며 일한 대가로 약과 원하는 음식을 사다가 봉양하면서 극진히 부친의 병환을 간호하였다.
[출가를 시켜야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부친의 강요에 따라 병중의 부친을 떠나 유(柳)씨와 혼인하게 되었다.
결혼 1년 만에 군에 입대한 남편은 입영 닷새 만에 6.25사변이 터져 전선에 배치되더니 입영 5개월째 되는 어느 날 장렬히 전사했다.
남편의 3년 상을 마치자 시댁집안 어른들은[개가를 해도 좋다]고 말했으나 그녀는 양자를 해 남편의 대를 잇기로 마음먹고 생활 문제를 해결키 위해 대구(大邱)로 나왔다.
외5촌의 도움으로 방직 공장에 취직을 해 굶주려가며 7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시가에 돌아갔다.
시가 어른들의 결정으로 양자를 얻은 그녀는 양 아들을 고등교육까지 시키는 등 여자로서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묵묵히 실행하고 있다.
- 이전글제16회 독행상(篤行賞) 유수식(柳壽植) 25.05.09
- 다음글제16회 독행상(篤行賞) 이분희(李粉姬) 25.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