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김임수(金任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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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1973년 4월 10일)
독행상(篤行賞)
금릉군 구성면 미평리
효부(孝婦) 김임수(金任洙) 32세

시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결혼한 후 곧 남편은 군에 입대해 시모(媤母)와 시누이 등 여섯 식구의 막연했다. 

품팔이로 나서 그 대가로 받은 곡식으로 시어른들에게 밥을 지어드리고 자신은 산에서 캐온 칡 뿌리를 갈아 죽을 쑤어 연명할 정도로 매우 궁색한 생활이었다. 

양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시부모(媤父母)의 밥을 한 끼라도 더 지어드리기 위해 자신은 산과 들에서 나물을 뜯어다 죽을 쑤어 먹으면서도 중노동을 쉴 새 없이 계속했다. 

이같이 없는 가운데 시부모(媤父母)가 노환으로 앓아 눕게 했다. 

힘든 노동에도 굶주려가며 약을 지어 병중의 시부모를 지극한 마음 가짐으로 간호했으나 시집 온지 6년째 되는 해 시모(媤母)는 세상을 떠났다. 

시모(媤母)의 죽음을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중풍으로 신음하는 시부(媤父)를 극진히 모셨으나 역시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시부모(媤父母)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수십 일을 식음을 앓고 효도(孝道)못한 속죄를 했다. 

그녀의 이 같은 효도(孝道)에 미평동(米坪洞) 등 동민들은 효부 찬양문을 지어 표창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