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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이(永川李)씨로 16세에 평산신(平山申)씨 댁으로 출가, 어린 나이에 시부모(媤父母)를 모시게 됐다.
시댁은 농토가 한 두락도 없어 생활이 매우 가난했다.
남편이 깊이 산속을 헤매며 캐어온 약초를 팔아 생계를 이어오는 형편에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갓 시집온 새 색시가 할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남편의 약초 캐는 것을 돕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험준한 산을 오르내리며 열심히 약초를 캤다.
약초를 팔아 양식을 장만하고 시부모(媤父母)의 옷감을 끊어 새 옷을 지어드리며 시어른과 남편을 정성을 다해 모시는 것이 그녀의 보람 이였다.
시집온 지 10년 첫 손자를 보고 그렇게도 기뻐하시던 시부(媤父)가 원인 모를 병으로 앓아 눕게 되었다. 그녀는 온갖 정성으로 약을 달여 드리고 지성으로 간호했으나 2년 동안 고생하던 시부(媤父)는 끝내 숨졌다.
시부(媤父)에게 못다한 효도(孝道)를 시모(媤母)에게 쏟아 정성으로 모셔오던 중 6.25를 맞았다. 전쟁 통에 남편과 사별(死別)하게 된 그녀는 겹친 불행에도 삶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고 중풍과 심장병으로 신음하는 시모(媤母)의 병구완을 극진히 들었다.
시모(媤母)의 완쾌를 위해 온갖 약을 다 구해드리는 한편 새벽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하늘에 빌었으나 수년간 신고하던 시모(媤母)도 세상을 떠났다.
온갖 시련과 충격의 고통을 겪는 가운데 어느덧 환갑을 눈앞에 둔 그녀는 외아들에게 효행(孝行)과 희생정신을 가르쳐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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