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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1959년 3월 11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達城郡) 옥포면(玉浦面) 교항동(橋項洞) 14리
효부(孝婦) 김달막(金達莫) 37세
6.25동란이 김(金)씨 가정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성실하고 근면한 남편은 경작할 농토가 없었지만 3명의 동생과 함께 날품팔이와 노동으로 행복한 생활을 이끌고 있었다.
6.25사변이 터지자 남편과 함께 성장한 두 동생이 한꺼번에 입대(入隊)하게 돼 하루 아침에 생계 수단이 막혀 버렸다. 노시부모(老媤父母)를 모시고 있는 김(金)씨는 노동판에 뛰어들어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며 눈 속을 헤쳐 땔나무를 해다 팔아 시부모(媤父母)를 봉양해야 했다. 입대한 남편과 시동생이 함께 전사(戰死)했다는 통지는 김(金)씨 가정을 절망케 했다. 시부모(媤父母)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후 6년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은 두 아들을 잃은 노부모(老父母)의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책(自責)을 한 후 쓰러진 노부모(老父母)의 병 치료에 정성을 쏟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가장의 역할은 힘겹고 고달팠으나 언제나 밝은 얼굴로 노부모(老父母)를 대했다. 틈틈이 산속을 헤매 약초(藥草)를 캐오기도 하고, 굶주리며 저축한 돈으로 약을 구입, 치료를 해 노부모(老父母)를 건강하게 회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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