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남식(申南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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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1959년 3월 11일)
독행상(篤行賞)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삼동(里門三洞) 256-347
효부(孝婦) 신남식(申南湜) 35세

경찰관(警察官)이었던 남편 정지선(鄭之善) 씨가 6.25동란 때 공비(共匪) 토벌(討伐)에 출동했다가 전사(戰死)해 혼자 힘으로 병든 시부모(媤父母)와 두 자녀를 떠맡아야 했다.

어려운 살림은 시부모(媤父母)가 장남(長男)의 전사(戰死) 소식을 듣고 앓아눕는 바람에 더욱 쪼들리기만 했다. 시모(媤母)는 식음을 전폐하고 비관하고 있어 자기 슬픔은 조금도 표현하지 못한 채 시모(媤母)를 위로하는 일이 하루의 일과였다. 신(申)씨는 3년 동안이나 자리에 누워 괴로워하는 시모(媤母)를 치료해 오고 있다.

시모(媤母)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결혼할 때 장만해온 패물과 옷가지를 모두 팔아 치워야 했으며 얼마 되지 않는 농토마저도 반이나 축을 냈다.

80여평 남은 논과 밭으로 식구를 연명하기는 벅찼다. 신(申)씨는 날품팔이, 바느질 거리 등 동리의 일거리는 모두 도맡아 가계(家計)를 꾸려가면서도 시부모(媤父母)에 대한 효성(孝誠)은 지칠 줄 몰랐다.

결국 비탄(悲嘆)에 빠져있던 시모(媤母)는 며느리의 정성 어린 치료와 위로 덕분으로 완치(完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