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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1959년 3월 11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達城郡) 논공면(論工面) 북동(北洞) 474
효자(孝子) 김상재(金相在) 36세
어려서 부친(父親)을 잃고 숙부(叔父) 집에서 조모(祖母)와 숙부(叔父)를 모시고 살아왔다.
80세 고령(高齡)의 조모(祖母)는 노환으로 이미 기동을 못했으며 6.25사변 당시 숙부마저 여름철 유행성 전염병에 감염돼 쓰려졌다.
동란(動亂) 중에는 노쇠한 조모(祖母)와 병든 숙부(叔父)를 혼자서 돌보며 피난길을 떠나가도 했다. 두 환자를 등에 업고 안으며 가야 하는 고통보다도 생명이 위독한 숙부(叔父)를 살려 내야 하는 어려움을 이겨야 했다. 겨울철 산속을 헤매어 약초를 구하고,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김(金)씨의 효성에도 보람 없이 숙부(叔父)는 피난 도중 숨졌으며 조모(祖母)는 수복(收復) 후에도 사경(死境)을 헤맬 정도로 쇠약해졌다. 수복 후 3년 동안 조모(祖母)에 대한 그의 효성은 범인(凡人)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극진했다.
어떤 날은 용한 한의(韓醫)를 찾아 조모(祖母)를 업고 1백리 걸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처(妻)와 노모(老母)가 계셨지만 조모(祖母)의 대소변은 자기가 직접 받아냈다.
그의 효성은 조모(祖母)를 소생(蘇生)시켰다. 지난해 3.1절에는 동민(洞民) 일동이 효자(孝子) 표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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